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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후기 구석기 시대(後期舊石器時代)}}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후기 구석기 시대(後期舊石器時代) | 시대=구석기 시대 | 키워드=[[구석기 시대]], [[샤텔페로니안]], [[오리냐시안]], [[그라베티안]], [[솔뤼트레안]], [[막달레니안]], [[이베로모루지안]], [[아마리안]], [[최후 빙하 극성기]], [[단일 지역 기원설]], [[다지역 진화설]], [[돌날]], [[흑요석]], [[뼈 연모]], [[좀돌날]], [[돌날 떼기]], [[돌날 석기]], [[격지 석기]], [[동굴 예술]], [[비너스상]]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3 | 집필자=공수진 }} ==설명== 후기 구석기 시대는 약 5~4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로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의 마지막 시기다. 당시 기후는 대체로 춥고 건조하였다. 특히 2만 년 전 무렵에 빙하가 최대로 발달하였는데, 지구 곳곳에는 고도, 위도, 바다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인들은 그들의 살림터를 오세아니아 지역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확장하였다.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를 이끄는 것은 현생 인류이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단일 지역 기원설과 다지역 진화설로 설명되기도 한다. 단일 지역 기원설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가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기존의 인류를 대체했다고 본다. 반면에 다지역 진화설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중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현생 인류로 발전했다고 본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도구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눌러떼기|눌러떼기]]처럼 새로운 도구 제작 기술이 등장하여 중기 구석기 시대보다 매우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이전부터 사용하던 [[돌감|돌감]] 이외에 뼈나 뿔 등의 유기질 재료를 활용해서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였다. [[격지|격지]]의 제작 기법도 크게 발전하였고, 지역에 따라 [[돌날|돌날]] 사용이 일반화되어 돌감의 경제성이 커졌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돌감으로써 [[흑요석|흑요석]]의 사용이 급증하였다. 석기 문화의 지역성도 더욱 뚜렷해졌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 편년은 서유럽의 사례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샤텔페로니안(Châtelperronien) 문화는 중기 구석기 시대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에 나타난다. 오리냐시안(Aurignacian) 문화에서는 [[뼈연모|뼈 연모]] 제작이 발달하였고, [[밀개|밀개]]와 [[잔손질|잔손질]]된 [[돌날석기|돌날 석기]]가 특징적이다. 그라베티안(Gravettian) 문화에서는 작은 돌날로 만든 [[찌르개|찌르개]] 종류가 발달하였고, ‘비너스’로 불리는 [[비너스상|여인상]]을 많이 만들었다. 솔뤼트레안(Solutrean) 문화에서는 두 면을 고르게 다듬어 만든 찌르개가 제작되었으며, 뼈 연모 제작 기술이 발전하여 [[뼈바늘|뼈바늘]]과 투창기(propulseur) 등의 새로운 연모가 발명되었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막달레니안(Magdalenian) 문화가 나타난다. 이는 유럽 전체에 퍼졌으며, 이 문화에서는 좀돌날 연모와 뼈 연모 제작이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예술 활동도 활발해서 대부분의 [[동굴벽화|동굴 벽화]]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한편,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는 유럽과 아주 다르며, 근동 지역에서도 유럽과 다른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가 나타난다. 북아프리카의 후기 구석기 문화는 이베로모루지안(Iberomaurusian) 문화라고 하는데, 등잔손질된 좀돌날이 대표적인 석기이다. 이 문화는 빙하 극성기 무렵인 2만 5천 년 전에서 2만 3천 년 전 사이에 나타나서, 1만 1천 년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근동 지역에서는 아마리안(Ahmarian) 문화가 지금의 시리아, 팔레스타인, 튀르키예 남부에 나타나는데, 시기는 4만 년 전 무렵이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 사용되던 르발루아 떼기가 돌날떼기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시베리아에서는 무스테리안 문화에서 파생된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가 나타나며, 중국에서는 작은 [[격지석기|격지 석기]] 문화가 발달하였다. 한국에서는 [[돌날석기|돌날 석기]]와 더불어 슴베 연모, 좀돌날 석기가 발달하였고, 일본에는 찌르개를 중심으로 석기가 발달하였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사냥|사냥]]과 [[채집활동|채집]]을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였는데, 이전 시기보다 [[어로활동|물고기잡이]]가 더욱 활발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사냥감도 크게 다른데, 당시의 사냥 활동이 지역의 기후 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순록을 가장 많이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사슴을 가장 많이 잡았다.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과 [[바위그늘|바위 그늘]]을 활용하거나 들판에 막집을 지어서 살림터로 썼다. 또한 가죽, 나무, 대형 동물의 뼈 등 다양한 재료로 집을 지었다. 집 구조도 복잡해지고, 프랑스의 팽스방(Pincevent) 유적, 벨기에의 샬뢰(Chaleux) 유적처럼 내부 공간을 용도에 따라 구별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집의 구조가 지역적으로 다양해진 것은 당시의 사회 구조가 그만큼 복잡해졌음을 보여 준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확대된 생활 영역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하여, 일정한 규칙과 리듬에 따라 일상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더불어 유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돌감이나 화석화된 조개는 주변 집단과 연결되는 연결망이 갖추어져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 한편,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예술 활동이 나타났다. 유럽 지역에서는 동굴 벽화와 함께 돌, 뼈, 뿔, 상아, 흙 등을 이용하여 제작된 조각품들이 발견된다. 이 시기의 예술 활동은 사냥의 성공이나 다산을 기원하는 실용적 목적의 주술 행위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복잡한 세계관을 나타내는 믿음의 표현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 시작된 매장 의식도 계속되었는데, 중기 구석기 시대에 비해 죽은 사람들을 동반하는 [[껴묻거리|껴묻거리]]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무덤 둘레에 붉은 흙을 뿌린 것도 자주 관찰되어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그라베티안_문화의_새기개.jpg File:막달레니안_문화의_프랑스_구르당_유적_출토_뼈바늘.jpg File:쇼베_동굴의_말_그림.jpg File:오리냐시안_문화의_밀개.jpg File:후기_구석기_시대의_기후_변화.jpg File:후기_구석기_시대의_뼈_연모.jpg </gallery> ==참고문헌== * Derevianko, A. P. (2012). <i>Recent discoveries in the Altai: Issues on the evolution of Homo sapiens</i>. Institute of Archaeology and Ethnography SB RAS Press. * Gamble, C. (1999). <i>The Palaeolithic Societies of Europe</i>(2n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www.riss.kr/link?id=M9863032 * Otte, M. et al. (1999). <i>La Préhistoire</i>. De Boeck Université.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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