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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강사리 유적(浦項 江沙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포항 강사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고인돌]], [[구덩이]], [[구멍무늬 토기]], [[그물추]], [[망치돌]], [[조갯날 돌도끼]]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성격=복합유적 | 크기=59,543㎡(조사면적)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강사리 산133-17, 187-1, 309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강사리 산133-17, 187-1, 309 일원에 위치한다. 구룡포-대보 간 도로 확장으로 2004~2005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강사리 산133-17, 187-1), 채석장 진입 도로 공사로 2015년 화랑문화재연구원(강사리 309)이 조사하였다. 유적은 우물재산(해발 180m)의 동쪽 사면 말단부에 능선을 달리하여 입지하며, 동쪽으로는 동해안을 따라 [[해안단구|해안단구]]가 발달하였고 그 외 삼면은 해발 150m의 나지막한 산계(山系)가 감싸고 있다. 유적은 반경 350m 거리에 위치한다. 강사리 산133-17 유적에서는 북쪽 구릉 사면부에서 [[집자리|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동쪽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길이 4.2m, 너비 2.72m, 깊이 0.44m이다. 북쪽으로 치우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 1개가 설치되었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바닥면(床面)에 12개, [[벽도랑|벽 도랑(壁溝)]]에 4개가 정형성 없이 배치되었다. 벽 도랑은 평면 ‘ㄱ’자 모양으로, 너비 0.1~0.3m, 깊이 0.1m이다.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강사리 187-1 유적에서는 집자리 7기, [[고인돌|고인돌]] 1기, [[구덩이|구덩이]] 2기, [[구|도랑(溝)]] 1기가 확인되었다. 4호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길이 5.26m, 너비 3.88m, 깊이 0.12m이며, 내부에는 길이 7~26㎝ 크기의 [[깬돌|깬돌(割石)]]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중앙 동편에 치우쳐 원형의 구덩식 화덕 자리 1기가 설치되었고, 내부에는 적갈색으로 불탄 깬돌이 채워져 있었다. 집자리는 바닥면에 6개의 기둥 구멍을 대칭되게 배치하였고, 네 벽을 따라 너비 0.15~0.25m의 벽 도랑을 설치한 후 10개의 [[벽기둥구멍|벽 기둥 구멍(壁柱穴)]]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남동쪽 모서리에는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길이 4.04m, 너비 0.49m, 깊이 0.21m로 설치되었다. 내부에는 길이 7~21㎝ 크기의 깬돌로 보강하였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민무늬 토기 편, [[그물추|그물추(漁網錐)]], [[망치돌|망치돌]]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북편과 남편에 각 1기씩 확인되었다. 2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1.28m, 너비 1.01m, 깊이 0.3m이다. 내부에서 목탄(木炭)과 민무늬 토기 바닥 편 3점이 출토되어 폐기장으로 추정된다. 강사리 309 유적에서는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3.85m, 너비 1.5m, 깊이 0.28m이다. 내부 시설로는 남벽과 동벽에 너비 0.2m, 깊이 0.1m의 벽 도랑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과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가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평면 형태 및 구조, 내부 출토 유물로 보았을 때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되며, 동해안 선상에 조성된 후기 취락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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