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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영국의 구석기 문화(英國의 舊石器文化)}} {{개념정보 | 키워드=[[클락토니안]], [[아슐리안]], [[그라베티안]], [[주먹 도끼]], [[부트 쿠페 주먹 도끼]], [[격지 석기]], [[르발루아]] | 시대=구석기 시대 | 위치=영국 | 집필연도=2023 | 집필자=이형우 | 관련 시기=서포크(Suffolk)의 페이크필드(Pakefield) 유적을 기준으로 MIS 19(-0.68 Mya) 또는 MIS 17(-0.75 Mya), 해당 유적이 가장 오래된 유적들 중의 하나(P. Pettitt and M. White 2012). | 성격=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설명== 영국의 구석기 연구는 1700년대 초반 코니어스(Conyers, J.)가 런던 그레이스 인 레인(Grays Inn Lane)에서 수집한 석기를 백포드(Bagford, J.)가 1770년 글로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O'Connor, 2007). 이후 1800년에는 프레르(Frere, J.)가 영국 혹슨(Hoxne) 지역의 지층에서 수습한 주먹 도끼와 관련한 내용을 ‘고고·상고사의 여러 흔적들(Archaeologia or Miscellaneous Tracts Relating to Antiquity)’이라는 학술지에 실었다. 당시 프레르는 지층의 개념과 함께 해당 석기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간의 한계보다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렸다. 1800년대 말까지 영국의 구석기 연구는 지질 연구와 진화론의 등장 그리고 아마추어 고고학이라는 세 방향으로 발전한다. 현대 지질학의 주요 저서인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를 쓴 라이엘(Lyell, C.)은 지질학과 석기 연구 성과를 함께 거론했다. 이후 많은 지질학자가 시간의 깊이와 고환경을 이해하는 지질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발굴을 진행했다. 매커너리(MacEnery, J.)의 켄트 카번(Kent’s Cavern) 동굴 유적, 펜젤리(Pengelly, W.)의 서남부 토케이(Torquay) 근처 브릭스햄(Brixham) 동굴 유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때만 해도 구석기 고고학이 본격적인 학문 분야로 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는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다윈(Darwin, C. R.)의 진화론도 구석기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사회와 문화 발전에 생물학적 진화 이론의 개념을 적용하는 시도가 있었고 단선 진화론적 관점을 문화의 변화에 적용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러복(John Lubbock, J.)을 들 수 있다. 그는 ‘선사 시대(Pre-historic times, as illustrated by ancient remains, and the manners and customs of modern savages)’에서 최초로 구석기(Palaeolithic)라는 용어를 썼다. 한편으로 실제 석기의 조사에서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현재도 사용되는 클락토니안(Clactonian) 석기 문화의 바탕이 되는 클락톤-온-시(Clacton-On-Sea) 유적이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스미스(Smith, W.)는 1894년 ‘사람과 원시인(Man the Primeval Savage)’을 저술했으며, 구석기 고고학의 현대적 연구 방법론이기도 한 붙는 석기 연구를 했다. 1900년대 초중반 영국의 구석기 연구는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하여 발전을 이어 갔다. 대표적인 연구자로 버킷(Burkitt, M.)은 프랑스의 선진적인 문화 편년 체계를 도입하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영국 최초의 구석기 개론서를 저술했고, 게라드(Garrod, D.)는 근동 지역 구석기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리키 부부(Louis, L., Louis, M.)는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인류의 진화를 밝힌 화석을 발견하고, 올도완 석기문화의 개념을 확립했으며 석기 고고학의 대중화에 이바지했다(이형우, 2009). 1900년대 중후반에는 영국의 전기·중기·후기의 구석기 시대의 편년과 유물의 특이성 등이 확고히 정립되었다. 와이머(Wymer, J.)는 아프리카에서 발굴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구석기 시대 유물 형식과 편년을 정리했다. 로(Roe, D.)는 영국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를 연구했는데, 특히 주먹 도끼의 수치 분석 방법론으로 유명하다. 멜라스(Mellars, P.)는 중기 구석기 시대와 함께 현생 인류 및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확산과 이동을 연구했다. 2000년대 이후 중요한 성과를 낸 연구자로는 아프리카 기원설과 영국 초기 인류의 정착과 진화를 연구하는 스트링어(Stringer, C.), 영국 전기 구석기 시대 클락토니안 문화의 정체성을 재검토한 화이트(White, M.), 영국의 중기와 후기 구석기 시대를 정리한 페티트(Pettitt, P.) 등이 있다. 영국의 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은 스완스콤(Swanscombe)이다. 이 유적은 지층별 석기 문화의 변이성이 뚜렷해서 학술 가치가 높다. 하층(lower gravel)에서는 찍개류 중심의 클락토니안 석기군이 관찰되는데, 이후 시기인 하중부층(lower middle gravel)과 상중부층(upper middle gravel)에서는 주먹 도끼가 출토되어 아슐리안 석기 문화 양상을 보인다. 상층부(upper loam)에서는 완성도가 매우 높은 타원형 주먹 도끼가 발견된다. 즉, 시간이 가면서 기술 복합도가 높아지는 흐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유적을 통해서 클락토니안 문화가 먼저이고 아슐리안 문화가 나중이라는 구도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조사된 박스그로브(Boxgrove) 유적은 이 가설을 뒤집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약 50만 년 전의 지층에서 정교하게 다듬은 타원형 주먹 도끼가 석기 제작소와 함께 출토되었다. 당시를 기준으로 50만 년 전 유적은 영국의 가장 오래된 유적이어서, 이는 최초의 석기 전통이 클락토니안 문화가 아니고 아슐리안 문화임을 시사한다. 2000년대 이후에도 해피스버그(Happisburgh) 유적과 페이크필드(Pakefield) 유적처럼 이를 증명하는 유적들이 연이어 조사되었다. 해피스버그 유적은 2000년대 초반에 조사된 유적으로서, 해피스버그 유적 3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 편년은 850,000~950,000 BP이다. 이는 기존의 가장 오래된 유적인 박스그로브 유적보다 시기가 올라가며, 이는 북서 유럽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de Groote et al., 2018). 주먹 도끼는 해피스버그 유적 1에서 출토되는데 그 시기는 MIS 13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서 주먹 도끼가 출토하는 시기는 유적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MIS 13~12단계부터 발견된다. 해피스버그 유적 1을 포함해서 박스그로브(MIS 13) 유적, 워런 힐(Warren Hill, MIS 13/12) 유적, 하이 로지(High Lodge Bed C, MIS 13) 유적이 대표적이다(Lewis et al., 2019). 영국의 중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 기술이자 석기는 유럽의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르발루아 기법으로 제작된 격지 석기이다. 그리고 주먹 도끼 유형도 변화했다. 이 시기에는 전기 구석기 시대의 첨두형이나 타원형과는 다른 이른바 부트 쿠페 주먹 도끼(bout coupe handaxe)처럼 보다 정교하고 작은 주먹 도끼가 제작된다. 중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데본 지역의 켄트 카번(Kent's Cavern) 유적, 웨일스 지역의 코이건(Coygan) 동굴 유적 등을 들 수 있다(White, Jacobi, 2002). 영국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은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비해서 적은 편이다. 이는 지형적 특징과 더불어 최후 빙하 극성기의 확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버들잎 모양 석기의 등장이 주목되는데, 여러 유적에서 이 석기와 관련된 제작 기술이 관찰된다. 로빈 후드(Robin Hood) 동굴 유적, 고트 홀(Goat's Hole) 동굴 유적, 워런 리빙스톤(Warren Livingston Pit)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형의 석기는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의 오리냐시안(Aurignacian) 전통과 흔히 연관 짓지만, 기존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Pettitt, White, 2012). 비록 수는 적지만 현생 인류의 유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오리냐시안 시기의 유적도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석기로 독특한 형태의 밀개와 새기개 등을 들 수 있다. 유적으로는 피핀논 뷔노(Ffynonn Beuno) 동굴 유적, 호일스 마우스(Hoyle's Mouth) 동굴 유적 등이 있다. 이후, 그라베티안(Gravettian)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찌르개 종류가 발견된다(Pettitt, White, 2012).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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