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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자갈돌 석기[礫石器]}} {{개념정보 | 이칭별칭=역석기, 냇돌석기 | 키워드=[[찍개]], [[여러 면 석기]], [[주먹 대패]], [[돌날 석기]], [[격지 석기]], [[몸돌 석기]] | 시대=구석기 시대 | 집필연도=2023 | 집필자=이헌종 | 관련 유적=석장리 유적, 정장리 유적, 촌곡리 유적, 노봉 유적 | 성격=도구 | 관련 개념=석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설명== 자갈돌 석기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강이나 바닷가의 자갈을 선택하여 석재를 채집할 때부터 목적에 부합하는 석기를 제작할 때까지 인지된 모든 체계에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부산물 전체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강자갈의 종류는 다양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자갈 가운데 석영이 가장 많이 활용된 석재라는 사실은 의미 있는 유사성이다. 1902년 캐피탄(Capitan, L.)이 프랑스의 동남 지역에서 찾은 석기에 ‘자갈돌 석기’라는 명칭을 붙인 후, 이 용어는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널리 사용해 왔으며 이 석기를 형식 분류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한국에서는 공주 석장리 유적의 자갈돌 석기 문화층을 연구하는 데서 시작하여 단순히 석기를 기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학자들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자갈돌 석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유럽의 자갈돌 석기 전통(pebble tool tradition)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여 제4기 지질학, 편년과 문화적 성격을 분석하였으며, 이를 동북아시아 전역의 문화상과 비교하는 연구로 이어갔다. 석영제 자갈로 제작된 석기는 주로 찍개, 여러 면 석기, 주먹 대패 등 주먹 도끼 문화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제작된 몸돌 석기들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자갈돌 석기는 전기 구석기 시대뿐 아니라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구석기 시대 전 기간에 걸쳐 활용된 보편적인 도구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남부와 북미에서는 전신세의 이른 단계까지 이 석기가 계속 사용되었다. 우선 석영이라는 석재 중에서 강이나 바다의 자갈을 선택한다는 것은 동일한 석영제 석재 중에서 가장 좋은 석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는 광의의 광산 개념이 포함된 문화 행위다. 전기 구석기 시대의 호모 에렉투스의 자갈돌 석기 전통이 인류 최초의 석기 제작의 산물이라면 동아시아의 중기 구석기 시대 이후부터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이어진 자갈돌 석기 전통은 이 지역에 정착한 인류가 지역적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이른 시기의 후기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자갈돌 석기로는 찍개, 여러 면 석기, 주먹 대패뿐 아니라 주먹 도끼, 주먹 찌르개와 같은 몸돌 석기가 함께 발견되며 끝날 긁개, 찌르개, 홈날 석기, 톱날 등 정교한 격지 석기도 공존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자갈돌 석기 전통은 중기 구석기 시대 이후 유럽과 차별화된 특징이 나타나는데,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그 기술을 계승하면서 돌날 석기 문화와 공존한다. 또한 석영제 석재의 활용이 문화화하면서 강이나 바다의 자갈뿐 아니라 산이나 언덕에 노출된 양질의 맥암류까지 석재로 활용하는 확장성이 나타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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