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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우릴 문화(Урильская культура)}} {{개념정보 | 키워드=[[취락 유적]], [[어로]], [[농경]], [[목축]], [[철재]], [[외반 구연호]], [[주조철부]], [[대가족 체제]], [[뼈연장]] | 시대=초기철기 | 위치=러시아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홍형우 | 관련 시기=기원전 12세기~기원전 2세기 | 관련 지역=러시아 아무르강 중·하류 일대 | 관련 유적=우릴 섬 유적, 미하이롭카 유적, 코치코밧카 유적, 막심 고르키 유적, 쿠켈레보-벤조바키 유적, 리브노예 오제로 유적, 수히예 프로토키 유적, 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 베줌카 유적, 말르이예 시미치 유적 | 성격=고고학문화 | 관련 개념=붉은 안료를 칠한 토기 | 뼈연장 | 취락 유적 | 주조 철부 | 대가족 체제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1961·1963년 오클라드니코프(Окладников А.П.)와 데레뱐코(Деревянко А.П.)가 아무르(Амур)강 중류의 우릴 섬에 있는 [[취락유적|취락 유적]]을 조사하면서 명명된 문화이다. 우릴 문화는 블라고베셴스크(Благовещенск)에서부터 콤소몰스크 나 아무레(Комсомольск-на-Амуре)까지 아무르강 중류와 하류에 폭넓게 분포한다. 아무르강 유역에는 [[우릴섬유적|우릴 섬 유적]], [[미하이롭카유적|미하이롭카 유적(Памятник Михайловка)]], [[코치코밧카유적|코치코밧카 유적]], [[막심고르키유적|막심 고르키 유적(Памятник Максим Горький)]], [[쿠켈레보-벤조바키유적|쿠켈레보-벤조바키 유적]], [[리브노예오제로유적|리브노예 오제로 유적(Памятник Рыбное Озеро)]] 등의 취락 유적이 위치한다. 또한, 부레야(Бурея)강 유역에는 [[수히예프로토키-1.2유적|수히예 프로토키 유적]], [[부킨스키클류치-2유적|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 [[베줌카유적|베줌카 유적]], [[말르이예시미치유적|말르이예 시미치 유적(Памятник Малые Симичи)]] 등이 있다. 규모가 큰 취락지는 대부분 강가나 호숫가의 높은 언덕에 위치한다. [[집자리|집자리]]는 크게 [[구덩식집자리|구덩식(竪穴式)]]과 [[지상식집자리|지상식]]으로 나뉜다. 구덩식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며, 면적은 50㎡에서 200㎡까지 다양하다. [[화덕자리|화덕 자리(爐趾)]]는 대부분 중앙부에 위치하며. 집자리 내에 화덕 자리가 여러 개 있는 것도 발견된다. 넓은 면적, 집자리 내 다수의 화덕 자리, 그리고 집자리 내부의 간벽(間壁)으로 인한 분할 흔적 등은 당시 우릴 사회가 [[대가족체제|대가족 체제]]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간주된다. 이는 집자리가 소형화되는 [[폴체문화|폴체 문화(Польцевская культура)]]와 비교된다. 지상식 집자리는 [[사냥|사냥]]과 [[어로활동|어로]]를 위한 임시 거주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취락 유적 내 3기만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금속 유물은 매우 드문 편이다. 청동기는 청동제 칼[우스티-울마(Усть-Ульма)], 손칼(刀子)편, 물갈퀴형 패식(佩飾)(부킨스키 클류치-1) 및 각종 패식, 구슬 등이 있다. 철기는 쇠칼(鐵劍) 편, 굴지구로 보이는 철기 편, [[주조철부|주조 철부(鑄造鐵斧)]] 등이 있다. 최근 조사된 수히예프로토키 유적에서는 [[카라수크문화|카라수크 문화(Карасукская культура)]]의 유물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유물과 철기(청동기를 방제한 쇠칼)가 출토되었다. 또한, 부킨스키 클류치-2유적에서는 [[철재|쇠 찌꺼기(鐵滓)]]가 확인되는 등 철의 현지생산을 보여주는 유적도 확인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수히예 프로토키 유적은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초, 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의 철제 유물은 기원전 12~10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속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에도 생산 도구는 여전히 [[골각기|뼈연장(骨角器)]]과 석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뼈연장으로는 [[뼈바늘|뼈 바늘(骨針)]], [[뼈추|뼈추(骨錘)]], [[뼈화살촉|뼈화살(骨鏃)]] 등이 있고, 석기는 잔손질하거나 마연하여 제작한 [[돌살촉|돌살촉]], [[돌창|돌창(石槍)]], [[돌도끼|돌도끼(石斧)]], [[석도|돌칼(石刀)]], 돌 바늘(石針), 석제 그물추(漁網錘), [[숫돌|숫돌(砥石)]], [[갈돌|갈돌(石棒)]]과 [[갈판|갈판(碾石)]] 등이 있다. 이외에 홍수옥, 편암, [[흙구슬|토제 구슬]]도 출토되었다. 우릴 문화의 토기의 특징은 붉은 안료를 칠한 토기가 많다는 점이다. 기종은 대용량의 대형 항아리(壺), [[외반구연호|외반 구연호(外反口緣壺)]], [[바리모양토기|바리(鉢)]], 접시(杯), 사발(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짧은 목에 입지름과 바닥 지름이 몸통에 비해 매우 작은 대형호가 특징적이다. 대부분 아가리는 외반하며, 표면은 마연(磨硏)하였다. 무늬는 주로 직·곡선문이며, 파상 융기문(波狀隆起文), 다치구(多齒具) 압인문(押引文), [[자돌문|자돌문(刺突文)]]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격자 두드림무늬(打捺文)와 새끼줄무늬(繩文)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무늬의 모티브는 번개무늬(雷文)가 주목된다. 소성 온도는 대체로 700~800℃이며, 900~10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제작 기법에 따라 전기(기원전 10~8세기)와 후기(기원전 7~5세기)로 나뉜다. 토기의 태토 분석에서 후기의 태토 첨가물이 유기물에서 내화토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였다. 생계 경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로로 파악되는데, 특히 물고기 산란기의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큰 사슴, 멧돼지, 순록과 같은 사냥도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을 것이며, 우릴 문화의 남쪽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 [[농경|농경]]과 [[목축|목축]]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릴 문화는 아무르강 유역에서는 처음으로 철기가 출현하여 [[아무르지역의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로 편년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에 따르면 기원전 12~11세기에서 기원전 5~4세기에 해당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릴 문화는 신석기-청동기 문화로 간주되었으나, 1970년대 우릴 섬과 [[폴체Ⅰ유적|폴체Ⅰ 유적]] 등이 발굴되면서 우릴 문화와 폴체 문화로 분리되었다. 이후 우릴 문화가 초기 철기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철기의 사용과 관련하여, 중국 쑹넌평원(松嫩平原)의 [[바이진바오문화|바이진바오 문화(白金宝文化)]], [[시퇀산문화|시퇀산 문화(西团山文化)]], [[샤자뎬하층문화|샤자뎬 하층 문화(夏家店下层文化)]] 등과의 비교·고찰 등 우릴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우릴 문화의 잔존 시기는 샤오싱안령(小兴安岭)을 중심으로 아무르 강 유역의 동쪽과 서쪽 지역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서아무르 지역에서는 기원전 4~2세기, 동아무르 지역에서는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기원전 5~4세기까지로 본다. 이후는 각각 [[탈라칸문화|탈라칸 문화(Талаканская культура)]]와 폴체 문화로 이어진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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