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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韓半島中東部地域의 新石器土器)

한국고고학사전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
기본 정보
동의어 강원 영동 지역의 신석기 토기, 한반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토기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중동부 지역
관련 정보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 울진 죽변리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 오산리식 토기, 죽변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김은영



설명

한반도 중동부 지역에 분포하는 신석기 시대 토기를 말한다.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토기 연구는 1980년대의 양양 오산리 A․B유적 발굴 조사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5~1996년에 이루어진 양양 지경리 유적, 1998년부터 시작된 고성 문암리 유적의 조사는 중동부 지역 토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강릉 초당동 유적, 양양 송전리 유적, 고성 철통리 유적을 조사한 데 이어, 양양 오산리 C유적울진 죽변리 유적을 발굴하면서 이 지역 토기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신석기 시대 연구에서 지역 구분에 중동부 지역이라는 명칭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그전에는 동북 지역이나 남부 지역에 포함되어 다루어졌고, 최근까지 강원 영동 지역, 동해안 지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중동부 지역의 고유한 토기인 오산리식 토기의 분포 범위를 기준으로 한다면, 중동부 지역은 강원도 전체와 경상북도 북부(울진군), 충청북도 동북부(제천시・단양군) 일대까지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지역에도 오산리식 토기가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북쪽 한계는 알 수 없다.

중동부 지역의 토기는 편평한 바닥 토기에서 뾰족 바닥 토기로 바뀐다. 편평한 바닥 토기에는 오산리식 토기와 죽변리식 토기가 있는데, 한반도 전체를 초창기(고신석기)-전기-중기-후기로 구분하는 편년 안에서는 전기에 해당하고, 이는 남부 지역의 6기 편년의 조기와 병행한다. 중기에 중서부 지역 토기가 확산하면서 돌연 뾰족 바닥 토기로 바뀌어 토기 형태는 단절적인 변화 양상을 보인다.

중동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정된 오산리식 토기는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는 바리 토기, 독 모양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사발 모양 토기로 구성된다. 편평한 바닥과 내면에 단이 형성된 아가리 형태가 특징적이다. 눌러찍기[押捺]찌르기[刺突] 기법으로 반붓두껍무늬[半竹管文], 점열무늬, 손톱무늬, 짧은 집선무늬[單集線文], 다치문(多齒文) 등을 시문하였다. 2000년대 초까지는 오산리식 토기는 덧무늬[隆起文] 토기에 후속하는 토기로 편년되었다. 그 후 2004년에 고성 문암리 유적의 발굴 성과가 공개된 후, 오산리식 토기와 덧무늬 토기는 층위나 형식이 공반 관계에 있으므로 같은 시기에 공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결국 오산리식 토기의 개념과 시기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재 오산리식 토기는 덧무늬 토기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지만, 오산리식 토기에 덧무늬 토기를 포함하는 의견과 포함하지 않는 의견으로 나뉜다.

오산리식 토기가 출토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양양 오산리 유적·양양 용호리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제천 점말 동굴 유적, 춘천 교동 동굴 유적, 단양 상시 2 바위 그늘 유적 등이 있다. 오산리 C유적 출토 오산리식 토기의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전 5,210∼5,010년으로 측정되었고, 오산리 A유적에서 오산리식 토기가 출토되는 5층과 6층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기원전 5,260∼4,430년으로 나타나, 오산리식 토기의 중심 연대는 기원전 5,0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그런데 2006~2007년과 2009~2010년에 양양 오산리 C유적과 울진 죽변리 유적(1-25번지)이 발굴되면서 오산리식 토기와는 전혀 다른 편평한 바닥 토기군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토기군은 죽변리 유적의 명칭을 따라 죽변리식 토기로 불리게 되었다. 죽변리식 토기는 독 모양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사발 모양 토기로 구성된다. 독 모양 토기는 죽변리식 토기만의 독특한 기형으로, 아가리가 안쪽으로 둥글게 오므라지는 내만구연(內彎口緣) 독과 안쪽으로 꺾여서 오므라지는 내절구연(內折口緣) 독으로 나뉜다. 내만구연 독에는 손잡이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내절구연 독에는 손잡이가 붙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독 모양 토기에는 붉은 칠 토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울진 죽변리에서 추가로 이루어진 발굴 조사 성과를 집성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붉은 칠 토기는 점열무늬가 시문된 하층기(下層期), 콩알무늬[豆粒文]가 부착되는 중층기(中層期), 바리 토기에 덧무늬가 시문되는 상층기(上層期)로 변화해 간다.

죽변리식 토기는 울진 죽변리 외에도 양양 오산리 C유적 최하층, 동해 망상동 유적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창녕 비봉리 유적 제4패층, 여수 안도 조개더미 등 남부 지역에서도 출토되어 매우 넓은 범위에 확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죽변리식 토기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기원전 5,930년~4,900년에 분포한다. 죽변리식 토기는 양양 오산리 C유적에서는 오산리식 토기보다 아래층에서 출토되었고,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는 덧무늬 토기보다 아래층에서 출토되었다. 죽변리식 토기와 오산리식 토기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일정 부분 겹치면서도 죽변리식 토기가 오산리식 토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분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기존에 덧무늬 토기보다 늦은 시기로 편년되었던 오산리식 토기가 덧무늬 토기와 거의 같은 시기로 재설정되면서, 남부 지역의 영선동식 토기와 시기가 같은 중동부 지역의 토기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시기가 공백기였는지, 그렇지 않다면 중동부 지역의 독자적인 토기가 존재하였는지는 앞으로 이루어질 발굴 조사에서 밝혀지게 될 것이다.

중기가 되면 중서부 지역 계통인 뾰족 바닥의 구분계 토기가 유행하게 된다. 중기 이후에는 중서부 지역과 달리 부가 무늬[附加文]가 매우 발달한다든지, 부가 무늬로 세로 생선뼈무늬 등 중서부 지역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무늬가 사용된다든지, 여러 날 무늬 새기개[多齒具]를 이용한 찰과상 시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근거로 지경리식 토기를 별도의 개념으로 설정하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함경도 지역에 분포하는 강상리 유형 토기의 영향으로 이해된다. 이후 일시적으로 남부 지역의 수가리 Ⅰ식 토기가 확산되는데, 함경도 지역에서는 남부 지역과 달리 금강식 토기가 같이 출토된다. 중기의 토기는 고성 문암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오산리 유적, 강릉 초당동 유적, 삼척 증산동 유적, 영월 주천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500년 전후가 중심이다.

후기는 구분계 시문 토기가 거의 사라지고 동일계 시문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가로 생선뼈무늬와 비뚠 격자무늬, 짧은 새김 줄무늬[短斜沈線文]빗금무늬[斜線文] 중심으로 무늬가 구성된다. 이 시기의 토기가 중서부 지역과 남부 지역 중 어디와 관련되는지는 연구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성 철통리 유적, 양양 송전리 유적․양양 가평리 유적, 강릉 교동 동굴 유적·강릉 안현동 유적 등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300~2,100년 정도로 확인된다.

중동부 지역의 편평한 바닥 토기 계통을 ‘동북아 평저(平底) 토기’의 직접적인 영향이나 이동에 의한 결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죽변리식 토기와 오산리식 토기에 속하는 붉은 칠 토기나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는 형태의 토기는 ‘동북아 평저 토기’와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이다. 중동부 지역의 토기는 독자적인 전통을 형성하면서도 한반도 동북 지역, 한반도 남부 지역, 중서부 지역 토기와는 관련성을 유지하며 발전해 나갔다. 신석기 시대 문화의 결절 지역(結節地域)의 역할을 한 중동부 지역의 특징이 토기에도 잘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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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