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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조개더미[靑銅器時代貝塚]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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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기본 정보
동의어 패총, 조개무지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군산 오식도동 노래섬 조개더미, 군산 오식도동 띠섬 조개더미, 서귀포 상모리 유적, 군산 비응도동 비응도 조개더미, 부안 격포리 격하 조개더미, 인천 청라동 장금도 조개더미, 라선 송평동 조개더미, 정주 석산리 당터산 조개더미
키워드 집자리, 뼈뿔연장, 그물추, 겹아가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재윤



설명

조개더미(貝塚)는 옛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의 껍질(貝殼)이 쌓인 곳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조개더미의 기능을 반드시 폐기장(廢棄場)으로만 보지 않는다.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안에는 조개껍질 뿐만 아니라 물고기 뼈나 짐승 뼈 등이 많이 발견되어서 당시의 먹거리상을 알게 해 주는 고고학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부러진 뼈로 제작된 바늘(針)이나 용도 폐기된 작살(鋸), 낚시(約針) 등도 포함되어 있다.

조개더미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도 드물게 나타나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조개더미가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청동기 시대에는 계속 나타나지만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전신세 중기-후기로 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집약적인 조개따기 활동은 점차 중지되었다.

최근 청동기 시대에 발굴된 노래섬 조개더미에는 조개껍질 외에 자연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다. 신석기 시대 층에서는 민어·참돔·복어 등의 물고기 뼈와 다량의 뼈뿔연장·그물추 등이 출토되며, 청동기 시대 층에서는 피뿔고둥과 백합 등이 소량 있지만 대부분 참굴로만 구성되어 있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조개더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혹은 생업 형태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조개더미 유적은 당시의 자연 환경이 그대로 반영되어서 환경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고고 자료이다. 유적의 성격상 당시 사용한 사람들이 해안가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해안선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지 않는 토양 환경에서 조개더미 내부의 동물 고고 자료 및 탄화된 곡물 자료는 자연 환경, 먹거리, 생업 등도 알 수 있게 한다.

조개더미 위에 무덤이나 집을 짓기도 했는데, 청동기 시대에도 집자리를 지은 흔적이 노래섬, 띠섬, 상모리 유적에서 발견된다. 야외 화덕자리고남리, 띠섬, 격포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청동기 시대에 급격히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생업이 주로 농경으로 바뀌면서 어업도 내수 위주로 전환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고남리나 초도 유적의 주민들은 농사짓기와 어업, 사냥과 채집 등을 포함해서 신석기 시대와 같은 생업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가운데 조개더미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조개따기의 단절에 대해 활용 전략의 변화, 남녀 사이의 관계 변화, 전승되어오는 지식과 상징의 변화, 주거 유형의 크기와 타입의 변화 등을 시사한다는 포괄적인 견해도 있으나, 이와 아울러 신석기-청동기 무렵의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도 매우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서해안의 도서 지방에서 청동기 시대의 조개더미들이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군산 비응도동, 군산 노래섬, 군산 띠섬, 부안 격포리, 인천 청라동 등이 있다. 제주도에도 상모리에서도 확인되었다. 북한에서는 송평동, 정주 석산리 유적이 알려져 있다.

고남리 유적이나 띠섬 유적은 특정 시기만 사용된 유적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생활 흔적이 남겨진 곳이다. 대부분 신석기 시대부터 흔적이 확인되지만, 띠섬 유적과 노래섬 유적에서는 백제 시대의 토기도 발견된다.

조개더미의 청동기 시대 층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각 유적마다 다양한데, 청동기 시대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가 발견되는 인천 청라동, 제주 상모리, 격포리, 비응도동 유적이 있다.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孔列) 등 부수적인 문양도 포함된다. 송국리식 토기가 발견되는 노래섬 유적도 있다.

북한에서 알려진 굴포리 유적에는 조개더미 위에 청동기 시대 집자리가 알려진 바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유적의 맞은편 비탈에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적의 신석기 시대 문화층에서 많은 뼈 제품 등이 출토되었는데, 조개더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정주 대산리 유적은 아래층은 신석기 시대, 위층은 청동기 시대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래층과 위층에서 나온 토기는 벽면에 점토띠를 위아래 방향으로 붙이고 그 사이를 새긴 문양이 주요하다. 동일 유물은 압록강 유역의 신석기 시대 신암리 4지점 2문화층과 랴오허강 하류의 자오공가(肇工街) 유적, 둥가오타이산(東高臺山) 유적에서 알려진 폔바오 문화(偏堡文化)와 관련성이 깊다. 대산리 유적의 위층에서 보고된 바닥이 편평한 토기도 이들과 같은 궤를 할 가능성이 크다.

송평동 유적은 일제 강점기에 발굴되었고 석산리 유적도 간략한 보고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이미지

참고문헌

  • 김재윤. (2013). 평저토기문화권의 신석기후기 이중구연토기 지역성과 병행관계. 한국고고학보, 88, 4–41.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861135
  • 신숙정. (1994). 우리나라 남해안지방의 신석기문화 연구. 학연문화사.
  • 원광대학교박물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2). 노래섬Ⅰ.
  • 원광대학교박물관. (2001). 띠섬 패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