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리 유적(淸道 華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청도 화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 86-3, 207-1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돌널무덤, 집자리, 고인돌, 바리 토기, 가지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간 돌검, 돌도끼,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대롱옥, 숫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 86-3, 207-1에 위치한다. 청도 풍각~화양 간 국도 4차로 확장 공사에 앞서 2008~2011년 Ⅰ·Ⅱ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구역에서 덮개돌(上石) 3기,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 3기, 돌널무덤(石棺墓) 19기, 추정 묘역 시설 2기, 집자리 8기, 구덩이 5기, Ⅱ구역에서 묘역식 고인돌 1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 9기, 집자리 7기, 구덩이 2기, 도랑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쪽에 위치한 청도천의 범람과 남쪽에 위치한 남산(해발 870m)에서 흘러내려 청도천으로 유입되는 곡부 하천의 영향으로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의 미고지(微高地)에 입지한다.
무덤은 4개 Ⅰ구역3개소(A~C)군, Ⅱ구역 1개소로 무리지어 분포한다. I 구역의 A군은 덮개돌 3기, 고인돌 3기, 돌널무덤 16기 등 총 22기가 열상 배치(列狀配置)되었으며, 장방형이다. 범위는 동-서 길이 23m, 남-북 너비 15m이다. I 구역의 B군은 묘역 고인돌 3기와 추정 묘역 시설 2기가 열상 배치되었으며, I 구역 C군은 돌널무덤 3기가 독립적으로 10~30m 간격으로 분포한다. Ⅱ구역은 1호 묘역 고인돌을 중심으로 반경 20m 내에 9기의 돌널무덤과 1기의 고인돌이 인접하여 배치되었다. 이는 지상에 노출된 덮개돌을 기준으로 지하에 있는 무덤들과 함께 일정한 묘역 공간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8기로, 이 중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인돌은 4기이다. 모두 받침돌(支石)이 확인되지 않아 뚜껑식(蓋石式) 고인돌로 판단된다. 무덤방(埋葬主體部)은 축조 양상에 따라 판돌형(板石形), 깬돌형(割石形), 혼합형(混合形)으로 구분되지만, 전체적으로 판돌형의 비중이 높다. 뚜껑돌은 일부 돌널무덤 및 고인돌에서 확인되는데, 여러 매의 판돌형 깬돌로 층층이 겹쳐 덮은 후 그 상부를 다시 작은 깬돌을 쌓았다. 이외에 돌널 내에는 판돌 등으로 간벽(間壁) 시설을 하여 주검 공간과 부장 공간으로 구분한 경우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등 유물 부장 공간에 깬돌을 깔아 높이는 등 묘제의 다양성도 확인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판돌 또는 깬돌로 전면을 깐 형태도 확인된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대부분 1단 이지만 Ⅰ구역 C군 3호 돌널무덤은 2단으로 조성하였다. 묘역 고인돌의 묘역은 원형(Ⅰ구역 B군 1·2호)과 장방형(Ⅰ구역 B군 3호, Ⅱ구역 1호)으로 구분되며, 구조는 깬돌을 봉분(封墳)처럼 쌓거나 깔아 구획하였다. 원형 묘역은 극대화된 형태로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장방형 묘역 중 Ⅰ구역 B군 2호는 북쪽과 동쪽에 방형의 형태로 돌출된 부분이 확인되며, 이는 의례 공간인 제단(祭壇)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슷한 구조는 진안 여의곡 2호 고인돌, 진주 대평리 옥방 1지구 5호 고인돌, 마산 진동 유적 A군 1호 고인돌에서도 확인된다.
집자리는 대부분 하천의 범람으로 파괴되어 상태가 불량하며, 무덤 하부 층에서 확인되어 무덤 조성 시기보다는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분포는 Ⅰ구역의 서쪽 끝 부분과 Ⅱ구역 전역에서 15기가 확인되며, 대부분 밀집 분포한다. 주변에는 야외 화덕 자리 및 도랑이 인접해 있다. 대부분 장방형이며, 1기만 세장방형이다. 내부는 무시설의 구덩식(竪穴式) 또는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Ⅱ구역 7호),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 바닥 불 다짐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중심 기둥 구멍이 일부 집자리에서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정형성이 없다. 야외 화덕 자리는 15호를 제외하면 모두 Ⅰ구역 2·3호 집자리 사이와 남동쪽에 집중 분포하여, 집자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형태가 다양하지만,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일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무질서하게 확인되어 폐기장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집자리와 고인돌에서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바리 토기(鉢形土器),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이며 무늬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口脣刻目短斜線文), 골아가리(口脣刻目文), 구멍무늬(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로 다양하다. 석기류는 슴베 없는 돌살촉, 통슴베 돌살촉,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통자루 간 돌검, 돌도끼, 조갯날 돌도끼(合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등이다. 옥류는 대롱옥(管玉), 반달 모양 장식 옥으로 구분되며, 특히 Ⅰ구역 5호 집자리에서는 다량의 숫돌과 함께 옥마석(玉磨石)이 출토되어 옥을 제작한 공방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Ⅰ구역 5호 집자리 299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20년), Ⅱ구역 1호 집자리 27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45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많은 무덤과 집자리가 확인되어,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청도천 주변에는 다수의 청동기 시대 마을(聚落)과 무덤 무리가 분포하여 유적 간 상관관계를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중요성이 인정되어 유구의 일부는 현장 보존 후 복토하였으며, 부장 공간이 딸린 6호 무덤은 이전 복원, 덮개돌은 도로 잔여 부지에 이전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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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영남문화재연구원. (2002). 풍각~화양간 국도4차로 확장공사구간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https://www.riss.kr/link?id=M8653785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청도 화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1750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