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중산동·매곡동 유적(蔚山 中山洞·梅谷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중산동 약수 유적에서 넘어옴)


중산동·매곡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중산동·매곡동 유적, 울산 중산동 715-1 유적, 울산 약수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중산동 19-13, 25-10, 710, 1323-16, 1325-12, 산 121-10, 매곡동 917, 917-4·5, 926-4, 94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 두름식 고인돌, 집자리, 검단리식 집자리, 연암동식 집자리, 도랑무덤, 움무덤, 돌도끼,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화살촉, 간 돌검, 숫돌, 갈돌, 반달 돌칼, 흔암리 유형, 검단리 유형, 연암동식 둘레 도랑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황창한



설명

울산광역시 중산동 19-13, 25-10, 710, 1323-16, 1325-12, 산 121-10, 매곡동 917, 917-4·5, 926-4, 948 일원에 위치한다. 이화초등학교 건립으로 2001년 조사하여 고인돌 2기를 확인하였다(중산동 715-1 유적). 이후 산업로 배면도로, 아파트 건립, 아파트 외곽도로 건설, 매곡 중산 지구 도시 개발로 2005~2007년, 2014~2015년 조사하였다(중산동 약수 유적). 중산동 715-1 유적과 중산 약수 유적은 반경 1㎞ 거리에 분포한다.

중산동 715-1 유적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릉(해발 67~75m)에 입지하며, 서쪽은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북쪽으로 1㎞ 떨어져 사적 관문성이 위치한다. 고인돌은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구릉 사면을 따라 나란하게 축조되어 있다. 1호는 덮개돌(上石) 없이 하부 구조만 일부 남아 있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길이 2.4m, 너비 1.4m이며, 시상은 길이 1.4m, 너비 0.7m 내외이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확인되지만, 후대 교란으로 훼손이 심하다. 덮개돌은 길이 2.35m, 너비 2.4m, 두께 1.3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받침돌(支石)로 추정되는 길이 0.8m의 깬돌(割石) 하나가 놓여 있으며, 시상 시설은 ‘ㄴ’자 모양이다. 외곽에는 길이 0.3m의 깬돌, 내부에는 0.1m 정도의 깬돌과 강돌(川石)이 놓여있다. 구조적인 면에서 2기 모두 자갈돌을 이용해 받침돌이 돌려져 그 자체가 돌방(石室)을 겸한 형태로 외형적으로는 받침돌이 덮개돌 아래를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조를 돌 두름식 고인돌(圍石式支石墓)이라고하며 주로 전남 지역과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중부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그 예는 적다. 경북 지역은 안동 지례리, 영일 달전리, 영천 용산동, 영덕 남산리 유적 등에서 조사되었는데 특히 안동 지례리 유적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대부분 돌두름식이다. 하부 구조가 돌두름식인 고인돌은 대부분 별도의 시상 시설을 갖추지 않고 맨 땅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일반적인데, 유적의 1호 고인돌의 경우 잔자갈을 깔아 시상 시설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이 빈약하고 교란이 심하여 축조된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다. 이러한 형태의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청동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약수 유적Ⅰ(중산동 산121-10, 25-10)은 가지구에서 집자리 9기, 도랑무덤(周溝墓)1기, 나지구에서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2·4·5·8호), 장방형(1·3·6·7호)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배수구가 확인되었다.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으로 추정되지만, 기둥 구멍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집자리가 드물어, 바닥에 구덩이를 파지 않고 기둥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화덕 자리는 원형이며 상면식구덩식(竪穴式)이 확인된다. 구덩식인 가지구 1·8호와 나지구 1호는 화덕 자리 내부에 민무늬 토기 몸통 편이 놓여 있었다. 도랑으로 보고된 유구는 도랑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내부 중앙에 움무덤(土壙墓)이 설치되어 있고, 돌도끼 2점이 부장되어 있으며, 외부를 세장방형의 도랑으로 돌렸다. 토기는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가지구 8호의 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이고, 문양이 확인되는 토기 편은 낟알 무늬(突瘤文)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주를 이루며, 낟알 무늬에 짧은 빗금무늬가 복합된 것이 1점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도끼, 화살촉, 간 돌검편, 숫돌(砥石), 갈돌(碾石棒), 반달 돌칼,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가지구 3호 집자리에서는 손잡이에 둥근 홈이 새겨진 간 돌검 편이 출토되었다. 이 돌검은 울산 구수리, 포항 초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 돌검과 같이 세로 방향으로 둥근 홈이 두개 음각되어 있으며, 재가공 흔적이 확인된다. 유적의 시기는 토기의 복합무늬와 장식돌검 등으로 볼 때 상한은 흔암리 유형의 늦은 단계로 볼 수 있으나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로 추정된다.

약수 유적Ⅱ(매곡동 917)는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며, 집자리 35기, 연암동식 둘레 도랑 12기, 구덩이 2기, 토기 매납 시설(埋納施設) 1기, 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1기, 도랑(溝) 2기 및 원삼국~조선 시대의 유구가 확인된 복합 유적이다. 취락의 공간 배치는 능선부에 연암동식 둘레 도랑과 연암동식 집자리가 위치하며, 사면에 집자리가 입지한다. 집자리는 울산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검단리식 집자리 32기, 집자리 외곽에 도랑이 돌려져 있는 연암동식 집자리도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집자리의 규모는 길이 5~6m의 장방형, 길이 7~8m의 중형급 집자리도 일부 확인된다. 집자리가 폐기될 때 14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던 것이 확인되었다. 탄화된 목재는 동정 결과 굴피나무, 졸참나무 등의 낙엽교목들이 주를 이룬다. 연암동식 집자리는 깊이가 얕고 입지적으로 구릉의 정선부나, 취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의례와 관련된 집자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또한 집자리가 없고 원형 또는 말각 장방형의 도랑만 확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설도 취락 내의 의례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있다. 한편 이러한 유구에 대해 도랑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으나 무덤으로 볼 수 있는 매장 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골아가리(口脣刻目)가 확인되지만, 겹아가리(二重口軟)가 아니라는 점에서 흔암리 단계의 요소가 거의 사라진 문양 구성일 가능성이 높다. 토기로 본 취락의 상한은 골아가리무늬의 소멸 단계인 흔암리 유형의 늦은 단계에 해당하며 하한은 구멍무늬와 혹무늬가 확인되는 검단리 유형의 이른 단계로 판단된다. 석기류는 완성품 외에도 미완성품이 각 집자리에서 확인되어 집집마다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약수 유적Ⅲ(매곡동 917-4·5)은 약수 유적Ⅱ의 외곽으로 도로 건설에 의해 조사된 동일한 유적이다. A구역에서 집자리 2기, B구역에서 집자리 3기, 도랑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내부 양상은 약수 유적Ⅱ와 같다. 유적의 시기는 퇴화된 겹아가리에 ‘X’자 무늬와 구멍무늬가 복합되거나,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등 복합무늬로 볼 때 약수 유적Ⅱ의 이른 단계인 흔암리 유형의 늦은 단계로 편년된다. B구역에서 조사된 도랑은 능성부에 위치하며, 약수 유적Ⅱ의 연암동식 둘레 도랑과 동일한 의례 유구로 추정된다.

약수 유적Ⅳ(중산동 19-13, 1323-16, 1325-12, 매곡동 926-4, 948)는 총 7개 지구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그중 Ⅲ지구에서 집자리 6기, 도랑 1기, Ⅳ지구에서 집자리 7기, 도랑 3기, 구덩이 2기, Ⅴ지구에서 집자리 2기, Ⅵ지구에서 집자리 6기, 구덩이 1기, Ⅶ지구에서 집자리 6기, 도랑 2기, 구덩이 2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가 확인된 5개 지구는 동쪽의 동대산에서 서쪽의 동천강 뻗어 내려온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모두 검단리식 집자리로 22기는 사면에 분포하고, 5기는 능선에 분포하는데 능선에 입지한 집자리는 모두 집자리 주변에 구가 돌려진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대부분 아가리와 바닥 편이며 기형을 알 수 있는 것은 소량이다. 기종은 깊은 바리 토기,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등이며, 석기류는 수렵구, 농구, 공구 등 비교적 다양한 구성이지만 수량이 적다. 토기의 무늬는 복합무늬와 단독무늬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단독무늬에서 낟알 무늬가 많다. 따라서 유적의 전반적인 시기는 흔암리 유형의 늦은 단계를 상한으로 볼 수 있으며 중심 연대는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한다.

중산동 약수 유적의 조사를 통해 이 일대에 대규모 마을이 분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일반적인 집자리 뿐만 아니라 도랑무덤, 연암동식 집자리, 연암동식 둘레 도랑, 구덩이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어 집자리와 무덤, 의례 시설의 관계 등 당시 마을의 양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1년 9월 28일~2001년 12월 16일 울산 중산동 715-1번지 유적 2003 영남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 1월 10일~2005년 11월 5일 울산 중산동 약수 유적 I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 5월 3일~2005년 9월 5일 울산 중산동 약수 유적 I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6년 11월 8일~2007년 5월 18일 울산 중산동 약수 유적 II 2009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4년 1월 13일~2015년 7월 3일 울산 중산동 약수 유적 III 2016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5년 3월 2일~2015년 10월 2일 울산 중산동 약수 유적 IV 2017 울산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