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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리 유적(高敞 竹林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죽림리 유적에서 넘어옴)


죽림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죽림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87-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환호, 집자리,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돌살촉, 반달돌칼, 홈자귀, 숫돌, 송국리 문화, 간 돌살촉, 갈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87-4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군산-고창 간) 건설 공사에 앞서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북쪽의 화시봉(해발 403m)을 중심으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리는 구릉(해발 50m 내외) 상에 위치하고, 주변으로는 비교적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형성되기 좋은 지형이다. 유적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져 고창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사적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이 직선거리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유구는 주로 구릉의 정상부에 입지하고, 주변에는 송림(松林)과 무덤이 조성되어 있으며 남사면, 서사면, 북사면은 개간되어 밭으로 경작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구릉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환호(環濠) 1기와 청동기 시대 집자리 6기, 건물터 2기, 구덩이 6기, 기둥 구멍군 등이 구릉 정상부와 사면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구릉 정상부(해발 47~50m)에서 6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내부 양쪽으로 두 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된 전형적인 송국리식 집자리로, 평면 형태는 원형 5기, 방형 1기(4호)이다. 1~3호는 구릉 정상부의 남서사면부에, 5호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되었고 4호와 6호는 북사면에 위치하나 환호에 의해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다. 집자리는 지름 3.28~5.15m 정도이고, 면적은 20㎡ 내외이나 5호가 8.8㎡로 가장 작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니질의 회백색 점토 다짐 처리(1~3호)하였고, 3호에서는 일부 불 다짐 흔적도 보였다. 내부 시설로는 3호와 6호 일부 벽에서 길이 0.6m, 깊이 0.1m 내외로 얕게 굴착된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소량의 민무늬 토기 편과 다양한 간석기들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거의 대부분 파편으로, 기형 파악이 어려우나 구연은 내만하거나 직립된 것만이 확인되었다. 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과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등 형태가 다양하고 다른 형식이 함께 출토되었다. 그리고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石劍)편, 반달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건물터는 2기가 확인되었는데 구조에 있어 차이를 보였다. 1호는 평면 형태는 육각형이나, 기둥이 세워진 적심(積心) 5개소가 남아 있다. 적심 간의 거리는 2.18~2.8m 내외로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적심은 길이 0.28~0.82m, 너비 0.24~0.6m이고, 일부에서 불탄 흙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적심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소량 출토되었으나 교란되면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2호는 기둥 건물(堀立柱建物)의 구조로, 기둥 구멍이 방형으로 배치되었다. 전면과 측면 각 1칸 규모이고 남북 길이 3m, 동서 길이 3.2m 내외이다.

구덩이는 구릉 정상부에서 4기가, 사면부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과 원형으로 구분되고, 크기는 너비 1m, 깊이 0.2m 정도로 작은 편이다. 유물은 1호에서 민무늬 토기 바닥 편이 소량 확인되었을 뿐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환호는 구릉 정상부를 둘러싸듯이 단독으로 조성되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깝고, 남쪽 부분은 3.4m 정도의 너비로, 출입구로 추정되며, 동쪽과 서쪽 일부는 경작으로 인해 훼손되었다. 전체 길이는 116m, 동서 길이 40.5m, 남북 길이 33.7m 정도이며,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내부 면적은 1,071㎡, 구(溝) 너비는 2.~4.m 정도이고, 단면형태는 ‘U’자 모양이다. 가장 깊은 남쪽 출입구 쪽이 0.52m이고 가장 낮은 서쪽 부분이 0.07m 정도이다. 환호 내부에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4기(3호~6호), 지상건물터 2기, 구덩이 등이 자리하나, 4호와 6호 집자리는 파괴되었다. 또한, 환호 바깥쪽인 남서쪽으로 청동기 시대 집자리 2기(1·2호)가 분포하나 환호와의 관련성은 명확하지 않다. 유물은 환호 내 퇴적토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편만이 소량 출토되었다.

죽림리 유적의 특징은 환호와 집자리 등이 함께 분포한다는 점이다. 특히 환호는 구릉성 입지와 형태, 출입구를 둔 점 등이 울산 검단리 환호 등과 유사하다. 그리고 환호와 집자리와의 관련성 및 선후 관계를 통해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환호가 축조되기 이전 단계로, 환호에 의해 파괴된 구릉 정상부의 4호(방형)와 6호(원형) 집자리가 있다. 집자리의 크기는 모두 소형이고, 타원형 구덩이의 방향은 구릉 방향과 나란한 동-서 방향이다. 유물은 슴베 없는 돌살촉과 반달 돌칼이 1·3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고, 특히 3호 집자리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른 단계에서 출토되는 삼각 오목 돌살촉이 확인되어 3호가 가장 이른 시기의 집자리일 가능성이 있다.

2단계는 환호가 축조된 시기로, 환호 내에는 집자리와 건물터, 구덩이 등이 분포하는데 대부분 슴베 간 돌살촉송국리 문화 단계의 유물이 확인되었고, 환호 외부에 축조된 2호 집자리에서는 홈자귀, 간 돌살촉, 갈돌(碾石),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죽림리 유적에서 대형의 환호와 함께 조사된 집자리는 모두 송국리식으로, 고창에서는 산정리 유적과 함께 반경 20m 범위 내에 집자리가 밀집된 양상으로 분포 빈도가 높은 편이다. 또한 인접한 죽림리 일대에는 400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죽림리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어 죽림리 고인돌을 축조한 집단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2006년 서해안 고속 도로(군산-고창간)건설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고창의 주거지Ⅰ-신덕리Ⅰ·Ⅱ·Ⅲ-B, 신송리, 죽림리 지석묘, 죽림리, 산정리 유적- 2006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참고문헌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6). 서해안 고속 도로(군산-고창간)건설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고창의 주거지Ⅰ-신덕리Ⅰ·Ⅱ·Ⅲ-B, 신송리, 죽림리 지석묘, 죽림리, 산정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869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