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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황먀오 문화(玉皇廟文化)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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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황먀오 문화
기본 정보
동의어 옥황묘 문화(玉皇廟文化)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옌산산의 남부산맥
관련 정보
유적 위황먀오 유적, 베이신바오 유적, 리수거우먼 유적, 파오타이산 유적, 시량광 유적, 후루거우 유적, 샤오바이양 무덤, 니허쯔촌 유적, 구청춘 유적, 우다오허쯔 유적
키워드 초원 유목 문화, 동물 장식, 움무덤, 동검, 동부, 동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인욱



설명

중국 허베이성과 베이징 북부를 중심으로 하는 옌산산(燕山)의 남부산맥에서 기원전 8~5세기에 존재했던 초원 유목 문화이다. 1980~1990년대 쥔두산(軍都山) 일대를 조사한 진펑이(靳楓毅)는 관련 유적을 쥔두산 유형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자료의 증가로 대표 유적인 위황먀오 유적을 표지로 하여 위황먀오 문화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중국에서는 학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산융 문화로 명칭이 통일되었다.

위황먀오 문화는 20세기 초중반부터 알려졌다. 당시 ‘오르도스 청동기(Ордосские бронзы)’로 통칭되던 동검동물 장식 중에는 북경 일대에서 수집된 것들이 많았고, 이후에 위황먀오 문화에 속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유적에서 위황먀오 문화가 확인된 최초의 예는 1964년 보고된 연나라계 무덤 베이신바오 유적에서 스키토-시베리아 유형(Скифо-сибирский тип)의 동검이 발견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정사오쭝(鄭紹宗)에 의해 관련 유물이 소개되고 타오쭝즈(陶宗治)가 샤오바이양(小白陽) 무덤을 조사하였다. 이후 단편적으로 리수거우먼, 니허쯔촌(泥河子村), 파오타이산 유적 등을 조사하였다. 하지만 이 유적들이 위황먀오 문화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진펑이가 1985~1990년 위황먀오 유적을 조사하면서부터이다. 위황먀오에서 200여기의 무덤이 조사되었고, 이후 시량광, 구청춘(古城村), 후루거우 등의 유적을 조사하여 현재까지 약 600여기의 무덤이 알려졌다. 위황먀오 문화의 집자리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무덤만으로 그 문화상을 짐작할 수 있다. 무덤은 대부분 움무덤(土壙墓)이며 매장 주체부의 윗층 또는 짧은 벽(短邊)위에 동물 뼈를 부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대형 무덤은 2차로 무덤 구덩이를 판 경우도 있다.

출토 유물은 동검, 동부(銅斧), 동물 장식 등 초원계가 주를 이루지만, 다른 중국 북방 장성지대의 마오칭거우 문화(毛慶溝文化)양랑 문화(楊郞文化)와 비교하면 일부는 중위안에서 들여온 청동 예기동과(銅戈)도 보인다.

위황먀오 문화는 스키토-시베리아 유형 시기(기원전 8~3세기)에 해당하는 중국 북방 장성지대의 문화지만 그 세부적인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진펑이는 유라시아 초원 청동기의 편년에 따르면 카라수크 단계에 해당하는 베이징 시보쯔 유적(西拔子遗址), 핑취안 둥난거우를 위황먀오 문화에 포함시켜서 그 시작을 서주 중기(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소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유적들은 위황먀오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분리하여 보는 학자들이 더 많다.

또한, 위황먀오 문화의 시작 연대에서는 초기 스키토-시베리아 시기의 문화 요소는 확인되지 않는다. 공반되는 초원계 청동기를 기원전 7세기 후반~6세기 초반으로 보는 견해와 중위안 지역과의 비교 편년을 통해 기원전 8세기대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동물 장식을 중심으로 그 연대를 구분한다면 대체로 8세기말~7세기 초반대로 보인다. 반면 하한 연대는 다른 중국 북방의 유목 문화보다 빠르게 소멸된다고 보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베이신바오, 리수거우먼 유적에서 위황먀오 문화의 청동기가 빠르게 중위안계로 대체되는 양상의 원인은 연나라의 팽창과 관련 있는 것이다. 대신 위황먀오 문화는 점차 랴오시 지역의 비파형동검 문화로 확산된다. 이는 랴오닝 링위안 우다오허쯔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이외에 위황먀오 문화에서 유행한 호랑이와 말의 동물 장식을 한 허리띠를 한반도 동물형 허리띠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위황먀오 문화를 남긴 사람들에 대한 민족 비정에 대하여 진펑이는 역사 기록에 나오는 산융으로 보고 산융 문화로 명명했으며, 현재 중국의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도 산융 문화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역사에 등장하는 산융과 시기적으로 부합하지 않아 따르지 않는다. 현재까지 통일된 견해가 없이 다양한 민족이 후보로 거론되는 정도이다.

위황먀오 문화는 동북아시아 비파형동검 문화와 가장 인접한 초원 유목계 문화라는 점에서 한반도 초원계 청동기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를 준다. 또한, 중국 북방에서 중위안 제후국의 확장과 함께 점차 소멸되는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에 기원전 1000년기 중국 북방에서 중위안과 유목 문화의 접점 과정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중국 북방 지역의 청동기와 관련한 자료에서 위황먀오 유적은 가장 체계적인 발굴과 보고를 통하여 그 성별, 인구구조, 생계경제 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