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유적(龍川 新岩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룡천 신암리 유적, 용천 신암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안북도 룡천군 신암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미송리식 토기, 팽이 토기, 간 돌살촉, 가락바퀴, 청동 손칼, 청동 단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안북도 룡천군 신암리에 위치한다. 신암리 마을은 서쪽에는 청등말래, 남쪽에는 공동 묘지, 북쪽으로는 모래산 등 높이 35m 안팎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언덕의 여러 곳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1965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66년에는 신의주역사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신석기~청동기 시대와 고구려 시기의 유적이 함께 확인된다. 문화층은 신석기 시대 무늬그릇층, 미송리식 토기 문화층, 그리고 고구려 시기의 문화층이 덧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신암리 유적 2지점인 모래산 언덕에서 확인되었는데, 3호 집자리는 길이 6.8m, 너비 5.6m, 깊이 0.2m이며, 2호는 잔존 길이 0.7m로 내부에 원형의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있다. 토기는 미송리식 토기로 띠 모양 손잡이(橋狀把手)와 입술 모양 손잡이가 각각 1쌍씩 붙은 것과 두 종류가 함께 붙은 것이 있다. 또한 겹아가리(二重口緣)와 겹아가리에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를 연속하여 새긴 변형 팽이 토기 등이 있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비뚠날 돌도끼(斜陵石斧), 달도끼(環狀石斧), 돌끌(石鑿) 등이 있고 가락바퀴는 흙으로 만든 것과 돌로 만든 것이 있다.
신암리 유적 3지점은 마을 축사 앞에 있는데 제2문화층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왔다. 표토층은 0.4m 두께의 모래층이며 표토층 밑에 검은 부식토층이 있고 그 아래에서 불탄 듯한 진흙 덩어리들이 섞인층과 검은 부식토층이 드러났는데 이것이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다. 그 아래에는 블그레한 빛을 띄는 모래층에서는 신석기 시대 무늬그릇과 채색 질그릇들이 나온다. 청동기는 청동 손칼(銅刀子)과 청동 단추(銅泡)이다. 청동 손칼은 다섯 편으로 부러져 나왔는데 본디 모습은 자루 끝에 고리가 달리고 등이 약간 휜 채 한 쪽에만 날이 있는 것이다. 길이 18.6㎝, 날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1.9㎝이다. 청동 단추는 지름이 3.9㎝로 얇으며 안쪽으로 휘어져 원판 모양을 이루고 있고 가운데 고리가 하나 붙어 있는데, 라진 대초도(초도) 유적 출토 원판 모양 청동기와 비교된다. 질그릇은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긴 목 단지, 굽 단지, 바리, 보시기, 접시 등이 있고 무늬는 점선과 줄무늬를 새기거나 덧무늬를 붙인 것들이 보인다. 질그릇 갖춤새는 랴오둥 반도에 있는 솽퉈쯔 유적(雙砣子 遺蹟) 3기층과 닮은 모습이다. 석기는 돌도끼(石斧), 달도끼, 반달 돌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砥石), 그물추 등이 있다. 그 밖에 질그릇 편을 갈아 만든 그물추, 가락바퀴가 있고 옥(玉)으로 만든 장신구도 나왔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65년 | 1965년도 신암리유적발굴보고 | 1966 | 사회과학출판사 |
| 발굴조사 | 1966년 | 1966년도 신암리유적발굴간략보고 | 1967 | 신의주역사박물관 |
참고문헌
- 김용간, 리순진. (1966). 1965년도 신암리유적발굴보고. 고고민속, 3.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22
- 리순진. (1965). 신암리 유적 발굴 중간 보고. 고고민속, 3.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81
- 신의주 력사박물관. (1967). 1966년도 신암리유적발굴간략보고. 고고민속, 2.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