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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리 유적(完州 龍興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완주용흥리유적에서 넘어옴)


용흥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완주 용흥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용흥리 산13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토기,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돌살촉, 돌칼, 숫돌, 갈돌, 덧띠 토기, 굽다리 접시, 가락동 유형, 송국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종철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용흥리 산137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시 관내 국도 대체 우회 도로(용정~용진 간) 건설 사업에 앞서 2010~2011년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곳은 금남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로 형성된 저평한 구릉들이 존재하고, 만경강의 영향으로 형성된 충적평야가 발달한 해발 20~40m의 구릉 및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Ⅰ구역에서 집자리13기, Ⅱ구역에서 독무덤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들은 동서 방향의 구릉 정상부를 따라 밀집 분포하여 하나의 취락을 형성한다. 독무덤은 주거군으로부터 450m 정도 떨어진 단독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모두 송국리식이지만 1기(4호)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주거의 공간 분포와 출토 유물로 볼 때 서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12기의 집자리 중 11기는 평면 형태가 모두 원형이지만, 1기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2개의 중심 기둥만 설치되어 있다. 11기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중심 기둥이 설치된 형태인데, 유일하게 1기(8호)에서만 4개 기둥이 설치되었다. 면적은 6·8호만 24~28㎡이고 나머지는 모두 12~18㎡로 중·소형이다. 집자리 대부분은 바닥면에 점토 다짐 처리하여 생활면 정지와 습기 제거를 도모하였다.

집자리에서는 송국리식 토기,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돌살촉, 돌칼, 숫돌, 갈돌 등 송국리식 주거에서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집자리들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중심부에 위치하는 8호 집자리에서만 상부층에서 둥근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 조합식의 쇠뿔 손잡이 조각, 굽다리 접시, 뚜껑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 양상은 나머지 집자리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보고자는 8호 집자리의 성격을 송국리 문화 에서 덧띠 토기 문화로 전환되는 양상으로 해석하였다.

독무덤은 지름 0.8m, 깊이 0.5m 정도의 움을 판후 곧은 목 항아리(直立口緣壺)를 바로 세우고 동일한 형태의 토기 편을 덮개로 삼는 형식이다. 덮개로 활용한 곧은 목 항아리는 아가리와 몸통 일부로 이루어진 조각과 몸통 아랫부분 조각으로 구성되어 크기와 형태를 복원할 수 있었다. 보고자는 가락동 유형에서 볼 수 있는 곧은 목 항아리라는 점을 고려하고 익산 석천리율촌리, 서천 옥남리 등의 독무덤을 참고하여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보았다.

용흥리 운교 유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유형의 취락이다. 탄소 연대 검출은 6호와 8호에서만 이루어졌는데 공통적으로 1시그마(95.4%)는 기원전 7~5세기에, 2시그마(68.2%)는 기원전 6~5세기에 분포한다. 8호 집자리의 타원형 구덩이에서 검출된 별도의 탄소 연대는 1시그마(95.4%)가 기원전 10~8세기 중반에, 2시그마(68.2%)가 기원전 9세기대에 분포하고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4개 시료의 탄소 연대와 집자리 분포 양상에 근거한다면, 6호에서 확보한 기원전 7~5세기의 어느 시점을 유적의 연대로 추정하는 것이 안정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 형성기의 중심적인 건물은 규모가 큰 6호였으며, 늦은 시기에 6호가 폐기되고 거의 같은 자리에 8호가 조성됨으로써 6호의 기능이나 성격을 계승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8호 집자리는 4주가 설치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었기 때문에 다른 집자리들에 비해 성격의 특수성을 판단하는 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또한 덧띠 토기와 굽다리 토기가 상층부에서 출토된 것은 두 가지 정도의 고고학적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8호와 덧띠 토기 등 일괄 유물을 별개로 파악하여, 8호가 폐기된 후 집자리와 별개로 함몰부의 재사용 또는 발굴 조사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유구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덧띠 토기 등은 기원전 5세기대 이후의 어느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8호와 덧띠 토기 등을 동일 시기로 보고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는 시기로 보는 것이다. 다만, 덧띠 토기·굽다리 토기·뚜껑·조합식의 쇠뿔 손잡이 등의 시기를 기원전 5세기대까지 소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용흥리 운교 유적은 완주 상운리, 완주 용흥리 유적과 문화적·시기적으로 관련될 가능성이 높으며, 둥근 덧띠 토기 문화의 유입과 확산을 설명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0년~2011년 완주 운교 유적 2013 호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