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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곡동 유적(慶山 玉谷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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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곡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경산 옥곡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산시 옥곡동 828, 83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고인돌, 돌널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골아가리, 취락 유적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광명



설명

경상북도 경산시 옥곡동 828, 830 일원에 위치한다. 서부 택지개발에 앞서 2001~2003년 2차례 조사하여, 집자리 278기, 구덩이 65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石棺墓) 9기 및 원삼국 시대 널무덤(木棺墓), 독무덤(甕棺墓), 삼국 시대~조선 시대까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성암산(해발 469m)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최말단부와 충적대지인 옥곡들 일원에 입지하며, 동쪽으로는 남천(南川)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금호강에 합류한다. 유적은 경상북도의 대규모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유적은 Ⅰ~Ⅲ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집자리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분포하고 있으며, Ⅰ구역과 Ⅱ구역 사이에 약 100m의 빈터(空地)가 있고, Ⅱ구역과 Ⅲ구역 사이에는 약 60m의 빈터가 형성되어 있어 집자리의 공간 분할이 가능하다. 또한, 집자리는 조사 구역 경계 바깥으로 확장되고 있어 실제 집자리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2개 유형(A·B형)으로 구분된다.

A형은 집자리 내부에 화덕 자리를 갖추고 있으며 형태가 장방형, 방형이다. B형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내부에 화덕 자리가 없는 집자리로, 원형은 유적의 남쪽에서 8기만 확인되었으나 화덕이 없어 B형에 속한다. A형 집자리는 169기가 확인되었다. 세장방형은 면적 33~49㎡로 유적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면적 70㎡ 이상인 초대형 집자리도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유적의 가운데에서 남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원상(半圓狀)으로 분포한다. 화덕은 대부분 무시설식이며,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를 갖춘 집자리는 11기이다. 돌 두름식 화덕 자리의 형태는 장방형이 3기, 방형이 8기이다. 그중 화덕 자리가 3개 이상 설치된 집자리는 8기로, 길이가 10m 이상이다. 화덕 자리가 4개, 8개인 집자리는 기둥 구멍의 중복 상태로 보아 덧고침(增改築)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B형 집자리는 108기가 확인되었다. 장방형과 방형, 원형으로 구분되는데, 장방형이 대부분이다. B형은 유적 중앙부와 남쪽에 밀집·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장방형은 총 66기로, 3~5기가 인접하여 무리를 이룬다. 길이 2.5~4.2m, 너비 1.15~2.9m, 평균 면적이 5~10㎡로 작다. 방형은 32기로, 길이 2.5~4m, 평균 면적 14㎡이다. 원형은 8기로, 이 중 7기가 Ⅲ구역에 위치한다. 방형과 원형 집자리는 가운데에 작업 구덩이와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어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구덩이는 총 65기가 확인되었으며, 집자리보다 규모가 작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 원형, 길쭉한 원형, 부정형(不定形)으로 구분할 수 있다.이 중 (장)방형, 원형은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된 것도 있고, 민무늬 토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미완성 석기도 출토되고 있어 작은 집자리 또는 작업장과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길쭉한 원형, 부정형은 바닥면이 고르지 않고 굴곡진 상태로 조사되어 흙을 채취하기 위한 토취장(土取場)의 용도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유적의 중앙부인 Ⅱ구역에서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1기만 확인되었는데, 길이 3.25m, 너비 2.4m, 높이 1m이다. 덮개돌 하부에는 길이 3.75m, 너비 2.4m에 걸쳐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섞어 깐돌(敷石) 시설을 설치하였다. 깐돌 시설의 가운데에서는 덧널무덤의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었으며, 내부는 길이 2.08m, 너비 0.55m, 깊이 0.7m이다. 고인돌 주변에서는 9기의 돌널무덤이 확인되었다. 1~6호는 고인돌 남쪽에 인접하여 무리를 이루며, 7~9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돌널은 대부분 혼펠스계 판돌(板石)을 사용하거나 판돌과 강돌을 섞어 쌓은 경우도 있다. 무덤 상면에는 대부분 판돌을 사용하여 뚜껑돌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간 돌검 1점만 부장된 것이 3기, 간 돌살촉만 부장된 것이 1기, 유물이 부장되지 않은 것은 4기이다. 유물은 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며 토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에서 확인된 유물은 토기류가 880여 점, 석기류가 710여 점, 토제품 및 석제품이 80여 점이다. 유물의 대다수는 A형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B형 집자리는 비교적 유물양이 적고, 숫돌(砥石)이나 미완성 석기 등의 출토 빈도가 높은 편이다. 토기류 중 가장 많이 출토된 민무늬 토기는 입술 형태에 따라 겹아가리(二重口緣), 유사 겹아가리 및 홑아가리 등으로 구분되며, 문양 구성은 골아가리(口脣刻目),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구멍무늬(孔列文) 등 하나의 무늬만 새겨진 것과 2가지 이상이 섞인 복합 무늬로 분류된다. 복합문은 골아가리와 조합된 문양 구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며, 단순무늬 역시 골아가리의 비율이 짧은 빗금무늬, 구멍무늬보다 출토 비율이 높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Ⅱ구역 1호 집자리 282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960년), 21호 집자리 27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50년)에 해당한다. 집자리와 무덤은 청동기 시대 전시기에 지속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집자리의 유형별 중복 현상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유적 전체에 집자리의 공간 점유율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과 돌널무덤 6기는 ‘선사유적공원’에 이전·복원되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1년 10월 08일~2003년 06월 12일 경산 옥곡동 유적Ⅰ 2005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참고문헌

  • 안재호. (2006). 청동기시대 취락연구.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 하진호. (2008). 대구지역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 (석사 학위 논문). 경북대학교.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5). 경산 옥곡동 유적Ⅰ. https://www.riss.kr/link?id=M12288641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9). 경산 옥곡동 유적Ⅳ. https://www.riss.kr/link?id=M12489912
  • 한국상고사학회. (2003). 경북지역의 지석묘-지석묘 조사의 새로운 성과. 한국상고사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125-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