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의 청동기(弥生時代의 青銅器)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미생 시대의 청동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북부 규슈 |
| 관련 정보 | |
| 유적 | 이마가와 유적, 가미토쿠리키 유적, 스구·오카모토 유적, 미쿠모미나미쇼지 유적 |
| 키워드 | 비파형동검 재가공품, 청동기, 청동 살촉, 청동 끌,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세형동검 문화, 청동 거울, 청동 종방울,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 한경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창희 |
설명
일본 열도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처음으로 청동기가 출현한다. 초현하는 청동기는 비파형동검의 재가공품이다. 후쿠오카현 이마가와 유적(今川遺跡)에서 출토된 청동 살촉과 청동 끌(銅鑿), 기타규슈시(北九州市) 가미토쿠리키 유적(上徳力遺跡)에서 출토된 청동 끌 등 모두 비파형동검의 칼끝이나 슴베 부분을 재가공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완형의 비파형동검이 부장되는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본격적으로 일본 열도에 청동기가 유입되는 것은 야요이 시대 중기 초두부터이다. 이 시기 북부 규슈에서 처음으로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을 중심으로한 한반도의 세형동검 문화가 동시에 출현한다. 무기형 청동기와 함께 출현하는 청동 거울(銅鏡)은 경배면(鏡背面)에 기하학적 문양과 2개 이상의 뉴(紐)를 가지는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多紐細文鏡)이다. 이러한 청동기가 부장되기 시작하면서, 도래계(渡來系) 공인 집단에 의해 일본 열도에서도 청동기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야요이 시대 중기를 거치면서 특히 무기형 청동기는 장대화(長大化)가 가속화되는데, 날이 예리하게 마연되지 않고, 부장이 아닌 매납되는 경향으로 변화한다. 이는 무기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의기화(儀器化) 되어 가는 것이다.
무기형 청동기(武器形靑銅器)는 한반도로부터 세형의 청동제 무기가 유입되면서 북부 규슈의 청동기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일본 열도의 초기 청동기는 한반도 청동기와는 다른 특징을 띤다는 점에서 유입 후 재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열도 내 청동기 생산의 본격화로 한반도에서 유입된 청동 무기류와 작은 청동 종방울(小銅鐸) 등은 대형화가 진행된다. 무기형 청동기는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으로, 각각 세형(細形) → 중세형(中細形) → 중광형(中廣形) → 광형(廣形)의 순으로 변화한다. 대형화와 함께 무기로서의 실용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의기로 기능하게 된다.
동검은 중세형 단계가 되면 검 몸(劍身)의 길이가 32~52㎝이고 너비는 넓고 편평해진다. 청동 투겁창은 길이 50~69㎝로 고리가 공부(銎部)의 돌대(突帶) 부위에 부착되어 있다. 돌대의 폭은 1~2㎝ 전후로 시기가 늦은 것일수록 폭이 넓다. 청동 꺾창은 길이 24~32㎝로 창 끝(鋒部)의 형태가 길고 넓어지는 특징이 있다. 날 부분(刃部)의 폭이 넓어지면서 날이 무뎌지는 등 절삭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시기는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에서 후반에 해당된다.
중광형 단계의 동검의 검 몸은 길이 약 52㎝, 청동 투겁창은 약 70~90㎝, 돌대의 폭은 2.5~4㎝가 되며, 창끝이 볼록해진다. 고리는 편평해지고 날은 더욱 무뎌지며, 후기로 갈수록 고리에 구멍이 사라져 끈으로 자루를 고정할 수 없어지는 등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고리가 부착된 위치도 더욱 아래로 내려오고 폭은 넓어진다. 청동 꺾창은 길이 34~37㎝로 칼끝이 볼록해지고 등대와 칼 끝의 길이가 거의 동일해진다. 시기는 야요이 시대 중기 말에서 후기 전반에 해당된다.
광형 단계의 동검은 결입부가 완전히 소멸되고, 가시 형태의 돌기가 생긴다. 늦은 시기가 되면 능각은 사라지고, 창끝의 폭이 넓어진다. 청동 투겁창은 길이 80~90㎝로 초대형화되며, 폭도 넓어진다. 고리는 편평한 판상(板狀)으로 변하며, 돌대가 사라진다. 돌선은 지느러미 형태를 띤다. 청동 꺾창은 길이 40㎝ 정도로 폭이 넓어지며 주방품(鑄放品, as-cast)에 가까워진다. 중광형 단계까지 존재했던 피 홈(血溝)에 시문된 문양은 광형 단계에 이르러 소멸한다. 시기는 야요이 시대 후기 전반에서 종말기에 해당된다.
청동 종방울(銅鐸)은 뉴를 가지며, 몸통의 안에 달린 설(舌)이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는 청동제 음구(音具)이다.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야요이 시대 전기설과 중기설이 있으며, 종말기에는 소멸한다. 형식은 뉴의 형태를 기준으로 능환뉴(菱環紐) → 외연부뉴(外緣部紐) → 편평뉴(扁平紐) → 돌선뉴(突線紐) 순으로 구분된다. 기본적으로 뉴의 단면 형태가 마름모꼴(菱形)이기 때문에 문양을 새기기에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부에도 가로줄무늬(橫帶文), 가사거문(袈裟襷文), 톱니무늬(鋸齒文), 물결무늬(流水文) 등 문양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또한, 일본 열도의 청동 종방울 약 10%는 문양 외에도 인물, 사슴, 왜가리, 자라, 잠자리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청동 종방울은 이른 시기에 길이 약 20㎝ 정도의 소형에서 마지막 시기에 이르면 최대 길이 134.7㎝로 대형이 된다. 능환뉴, 외연부뉴를 가진 청동 종방울은 내면의 돌대에 설이 접촉해서 생긴 마모 흔적이 있으나 편평뉴, 돌선뉴의 청동 종방울에는 내면의 돌대가 퇴화되어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청동 종방울은 ‘듣는 청동 종방울’에서 ‘보는 청동 종방울’로 변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무기형 청동기가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청동기라면, 청동 종방울은 긴키 지역을 대표로 하며, 주고쿠, 시코쿠, 주부中部 지역 등에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청동 종방울은 파편으로 취락에서 발견되거나, 취락에서 떨어진 곳에 매납되어 우연히 발견된다. 옆으로 눕혀져 복수의 청동 종방울이 뉴 부분의 방향을 엇갈리게 하여 매납된 사례가 많다. 또한 무덤에서 출토된 예가 없어 공동체 소유의 의기(儀器)로 추정한다.
청동 거울(銅鏡)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과 중국에서 전해진 한경(漢鏡)이 있다. 한일 양 지역에서 출토되는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은 공통된 문양이 있는 자료가 많다. 납동위 원소 분석을 이용한 산지 분석 결과에서도 한반도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 북부 규슈와 긴키 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은 모두 무덤에서 출토되고, 전국계 주조(鑄造) 철기와 함께 출토되는 사례가 있으나, 일본열도의 경우에는 철기가 공반되지 않는다. 부장은 주로 독무덤(甕棺墓)에서 이뤄지며, 한 개의 무덤에 한 개의 잔무늬 거울(細文鏡)을 부장한 사례가 많다. 또한 한반도의 잔무늬 거울은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과 달리 뒷면(背面)이나 뉴 부위에 사용 흔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아 주로 껴묻거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잔무늬 거울에서는 대부분 마멸흔이 확인되어, 부장 혹은 매납 전에 제사 등에 사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야요이 시대 중기후반 한사군 설치 이후부터는 한경이 일본 열도에 급격히 유입된다. 전한경(前漢鏡), 후한경(後漢鏡), 왕망경(王莽鏡) 까지 다양하며, 방격규구경(方格規矩鏡), 중권문경(重圈文鏡),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 이체자명대경(異體字銘帶鏡), 성운문경(星雲文鏡) 등이 북부 규슈를 중심으로 들어온다. 특히 북부 규슈의 겐카이나타(玄海灘) 연안 지역에 소재하는 스구·오카모토 유적, 미쿠모미나미쇼지 유적에서는 하나의 독널에서 20~30점의 한경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야요이 시대의 왕묘로 인식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 후기에 들어서도 청동 거울이 특정한 유력 개인묘에 다수 부장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으로 정착된다. 이처럼 무덤에 청동 거울을 부장하는 습속은 고훈 시대로도 이어지며, 일본 열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참고문헌
- 복천박물관. (2016). 일본 고대문화로의 초대. 복천박물관. https://www.riss.kr/link?id=M14398508
- 정한덕. (2002). 일본의 고고학. 학연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4638969
- 村松洋介. (2009). 일본열도 출토 다뉴세문경. 복천박물관.
- 早乙女雅博, 設楽博己. (2018). 考古学. 放送大学教育振興会. https://cir.nii.ac.jp/crid/1130000797585162240
- 毎日新聞社. (1995). 銅鐸の美. 毎日新聞社.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2536438
- 福岡市博物館. (2015). 新·奴国展. 福岡市博物館.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26985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