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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시대의 연대관(弥生時代의 年代観)

한국고고학사전


야요이 시대의 연대관
기본 정보
동의어 미생 시대의 연대관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일본 전역
관련 정보
키워드 방사성 탄소 연대, 벼농사, 수도작, 연대 결정법, 야요이 토기, 교차연대법, 독무덤, 청동 거울, 세형동검 문화, 연륜 연대법, 송국리 문화, 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창희



설명

2003년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国立歴史民俗博物館)이 새로운 야요이 시대 개시 연대를 발표 하면서 야요이 시대의 연대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AMS를 이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를 근거로 하여 북부 규슈 벼농사(수도작)의 개시를 기원전 10세기 후반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는 기존의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를 약 500년이나 소급시킨 것이다. 이후 자연과학적 분석을 이용한 연대의 정확성에 대한 원초적인 논의를 비롯하여 야요이 시대의 전통적인 연대 결정법에 대한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의 역연대(曆年代)를 부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 온 것이 문헌 기록이다. 위만 조선의 성립(기원전 194년)이나 중국 연(燕)의 동방 진출(기원전 300년경)을 각각 야요이 시대 전기 말 금속기의 출현,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와 결부시켜 왔다. 즉 교차연대법(交差年代法)을 통해 역연대를 추정한 후,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을 대입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이로 인해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가 변하게 되면, 그와 연동해서 역사적 스토리도 변해갔다.

일본 열도 내에서는 기년(紀年)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와의 관계를 참고하여 야요이 시대의 연대를 파악해왔다. 실질적인 물질 자료가 출토된 북부 규슈 지역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특히 독무덤(甕棺墓)에 부장된 청동 거울(漢鏡)을 이용한 교차 연대가 기준이 되었다. 껴묻거리로 청동 거울과 동시성을 나타내는 성인 전용(專用) 독널의 형식학적 편년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 기원 전후를 중심으로 하는 연대에 대해서는 연구자 간의 이견이 없었다. 청동 거울이 유입되기 이전인 야요이 시대 전기말부터 중기 중엽까지는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꺾창 등의 무기형 청동 의기류나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多紐細文鏡) 등의 한반도 남부의 세형동검 문화가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반도계 자료가 출토되기 이전인 야요이 시대 개시기부터 전기 후반까지의 연대 설정은 불가능하다.

한편,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 이타즈케식Ⅰ식 토기(板付Ⅰ式土器) 야요이 토기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보고되면서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를 기원전 5~4세기로 소급시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당시에는 방사성 탄소 연대 및 보정 연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전통적인 연대관인 기원전 4~3세기의 연대와 오차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방사성 탄소 연대 이용에 대한 긍정적 시각도 존재했다. 하지만 기원전 5~4세기로 추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이상치로 여겨지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사용하고,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참고만 해야 한다는 자세가 연구자들 사이에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는 기원전 300년경으로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AMS를 이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 일본에 소개되고, 연륜 연대법과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야요이 시대의 연대론에 방사성 탄소연대가 자주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야요이 문화와 한반도 남부 송국리 문화와의 관련성이 강조되면서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는 기원전 6~5세기까지 소급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 남부와 북부 규슈의 교차 연대를 토대로 토기에 부착된 탄화물(주로 그을음)의 AMS-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해 일본의 수도작 개시 연대가 기원전 10세기까지 상향되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이루어졌다. 최근 연구자들은 기원전 5~4세기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며, 기원전 10세기로 상향하는 것에 찬성하는 견해와 기원전 8~7세기로 수정하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새로운 연대관은 한국 고고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수도작의 개시 문제 및 철기의 출현 연대는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의 문화 전파와 깊이 관련되어 있고, 기존의 연구 성과에 의해 토기의 병행 관계 등이 세밀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자료가 가장 많이 축적된 곳이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야요이 시대의 기원전 10세기 상한설에는 한국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중국의 비파형동검이나 전국계 초기 철기 등에 대한 연대적 검토는 자세히 이루어졌으나, 한반도의 수도작이나 금속기와 관련된 방사성 탄소연대는 이용되지 않았다. 앞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에 대한 한·중·일의 종합적 비교·검토가 이루어져 지속적인 조정 작업이 거듭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