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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슐리안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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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슐리안
기본 정보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에티오피아 콘소 유적, 프랑스 세인트 생아슐 유적, 영국 박스그로브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
키워드 석기 공작, 주먹 도끼, 셸리안, 무스테리안, 아베빌리안, 모비우스 라인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이형우



설명

아슐리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이자 필수 불가결한 단위는 주먹 도끼라는 유물이다. 그러나 아슐리안은 유물에 한정되는 개념은 아니다. 유물에서 반복되는 복수의 집합체로서의 형식과 그와 공반되는 또 다른 형식들의 집합체인 유물군의 단위로도 아슐리안을 정의할 수 있다. 혹은 복수의 유적에서 출토된 주먹 도끼를 포함한 유물군의 총합을 이를 때 이를 아슐리안 공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슐리안 공작에는 암석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제작된 석기만이 해당하며, 나무나 뼈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슐리안은 단독으로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아슐리안 석기군’, ‘아슐리안 전통’, ‘아슐리안 공작’, ‘아슐리안 문화’와 같이도 쓰이며, 실제 많은 문헌에서 이러한 용례를 살펴볼 수 있다.

주먹 도끼를 포함한 석기군에 일정한 문화 전통적 개념이 담겨 있어서 일종의 고안과 전파라는 속성이 나타나면 그것을 아슐리안 전통이라고 부른다. 일단 전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분석 단위는 지극히 복합적인 특징을 가진다. 전통은 유물의 형태성과 시간성, 공간성을 모두 아우른다(이선복, 1999). 마지막으로 아슐리안 문화라는 용어는 전통과 같이 복합적이면서도 전통보다 위계적으로 상위에 있다. 모든 특징의 총체, 즉 극히 광의적인 개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먹 도끼라는 좌우 대칭을 이루며 비교적 날카로운 날이 양면에 가공된, 주로 한 손으로 잡고 사용하는 석기에 ‘아슐리안’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입힌 최초의 연구자는 모르티에(Mortillet, G.)다. 1870년대 그는 저서에서 주먹 도끼가 구석기 시대의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문화 단계를 상징하는 표지 화석라는 인식을 밝혔다. 그는 고고학뿐 아니라 생물학과 지질학에도 소양이 있었다. 그는 물질문화의 단계별 발달을 고려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단선 진화론적 사고를 한 셈이다. 그는 이른 시기의 구석기 시대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이를 주먹 도끼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초기 단계는 거칠게 가공된 주먹 도끼를 포함하는 셸리안(Chellean), 그다음은 본격적인 주먹 도끼를 포함하는 아슐리안, 그리고 이후는 현재 중기 구석기 시대 문화로 규정하는 격지 석기 중심이며 한편으로는 오늘날 기준으로 MTA(Mousterian of Acheulian Tradition) 석기군과 같이 변화한 소형의 정교한 주먹 도끼도 포함하는 무스테리안으로 규정한 것이다(Ignacio, 2016). 이후 브뢰유(Breuil, H.)는 셸리안을 아베빌리안으로 수정한다.

1940년대 모비우스(Movius, H. L.)는 주먹 도끼를 중심으로 공간적인 분포 단위를 고안하기에 이른다. 그는 아시아권과 서구권의 고고학적 증거의 대별성을 나타내는 표지 유물로 주먹 도끼를 사용한다. 그는 이른바 모비우스 라인의 동쪽 지역에서도 주먹 도끼로 보일 수 있는 석기가 일부 발견되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를 도면과 글로 기술하였다(Movius, 1948). 하지만 그는 동쪽 지역의 주먹 도끼를 원시형 주먹 도끼(proto-hand-axes)로 규정하였다. 단선 진화적 입장에서 완벽한 형태의 주먹 도끼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중국에서 주먹 도끼가 발견되며 동아시아에서 아슐리안 전통이나 아슐리안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강하게 대두되었다. 1970년대 연천 전곡리와 같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주먹 도끼가 발견되면서 모비우스 이론은 다시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사 고고학적 입장에서 아슐리안 문화는 방대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서 사회 집단의 사고가 유지되고 전수된 물적 결과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백만 년이 넘는 긴 시간과 구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광활한 공간에 걸쳐 유지되고 전수된 사회적 사고의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연천 전곡리 유적을 필두로 아시아에서 주먹 도끼가 발견되며 한반도에서의 아슐리안 문화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사 고고학적으로 아슐리안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곡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먹 도끼를 다시 살피면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먹 도끼를 포함하는 집단으로서 아슐리안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으며, 아슐리안의 정체성은 더 다양한 방향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