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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 1호 고분(Курган Аржан-1)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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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 1호 고분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러시아
소재지 러시아 투바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ыва) 북쪽 우유크(Уюк)강의 근처 해발 1,000m의 투란(Туран)-우유크고원 지대인 아르잔 마을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고분, 배장묘, 말갖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인욱



설명

러시아 투바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Тыва) 북쪽 우유크(Уюк)강의 근처 해발 1,000m의 투란(Туран)-우유크고원 지대인 아르잔 마을에 위치한 고분이다. 이 지역에는 3기의 대형 고분이 위치한다. 1호 고분은 지름 120m, 높이 3~4m, 2호 고분은 지름 80m, 높이 1.5m, 3호 고분은 지름 105m, 높이 1m 정도이다. 1호 고분은 1971~1974년 그랴즈노프(Грязнов М.П.)와 만나이-오올(Маннай-оол)이 조사하였다.

1호분의 봉분 밑에서는 지름 약 80m의 서로 연접한 무덤방(墓室)이 조사되었다. 고분 가운데에는 왕족 부부 고분이 위치하고, 그 동-남쪽에는 6개의 통나무관이 배장(陪葬)되어 있다. 매장 중심부 바깥으로는 주로 동, 남부를 중심으로 말 무덤이 설치되었다. 외부는 큰 돌로 쌓았으며, 그 하부에서는 방사상으로 무덤방이 다수 확인되었다. 무덤방에서는 총 29개의 매장 주체부가 발견되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중년의 남녀가 부장되어 있었다. 이를 중심으로 전체 무덤 범위를 잡고 주변에 다른 덧널(木槨)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무덤이 축조되었다. 무덤의 가장자리는 작은 통나무를 벽체로 비스듬하게 세워 마무리하였다. 방사상의 골조로 만들어진 공간 중 가장자리는 38개 정도이고, 약 6~7열로 되어 있어 약 250~300여 개의 무덤을 안치할 수 있는 크기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방사상으로 목조 골조를 쌓은 것으로 그랴즈노프는 조사 당시 약 100개 이상의 덧널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도굴 및 후대 파손으로 남아 있는 70기의 무덤 중에서 29기를 조사하였다. 무덤에 쓰인 나무는 모두 활엽수이며, 나이테를 보면 9월에 벌채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조사자는 가을에 이 족장의 장례를 위하여 약 1,500명의 사람이 7~8일간 주변에서 벌채를 해서 널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주요 유물 중 청동기동검, 청동 칼(銅刀), 간두령(竿頭玲), 골제 및 청동제의 말갖춤(馬具) 등이 대량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동검의 끝이나 간두장식(竿頭粧飾)에는 서 있는 동물 장식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 담비가죽의 외투 편, 각종 금제 의복 장식 등의 유기물이 발견되었다. 무덤에 부장된 사람 중에서 연령을 판단할 수 있는 피장자는 대부분 고령으로, 60대 이상이 6명, 40~60대가 1명, 50대 3명이었다. 반면에 청년(20대)은 1명에 불과하여 파지리크 고분(Могильник Пазырык)의 연대 구성(폴로시마크 Полосьмак Н.В., 2001)과는 대조를 이룬다.

아르잔 고분이 주목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출토된 유물 및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존의 스키타이 문화(Скифская культура)의 상한인 기원전 7세기보다 훨씬 이를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의 근동설이 반박되고, 시베리아 발생설이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한편, 아르잔의 상한 연대가 기원전 9세기로 상향되는 계기는 1호 고분에서 발굴된 풍부한 통나무 관재에 수륜 편년법을 적용하면서이다. 슈륜 연대는 기원전 885~790년임이 밝혀져 많은 학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를 통해 1호 고분의 축조는 적어도 기원전 9세기 초엽부터 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1호 고분은 처음부터 지름 200m에 이르는 묘곽(墓槨)을 설정한 후 점진적으로 축조하였다. 즉, 축조되기 시작한 단계는 이미 사회적 복합화가 진행되었으며, 고분 축조 집단이 형성되었던 시기는 기원전 10세기대로 소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토 유물은 말갖춤 위주이며, 말갖춤을 완벽히 갖춘 말 무덤도 사람의 무덤과 같은 크기와 위치로 만들어졌다. 즉, 말갖춤과 기승용 말의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말의 중요한 위치는 청동기 시대 후기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1호분은 가운데에 축조된 족장의 무덤을 중심으로 주변에 방사상으로 고분이 분포하는데, 각 고분들은 잘 짜인 덧널이 아니라 마치 귀틀처럼 구역만 배정된 형태이다. 출토 재갈멈치의 분석을 통하여 중심 무덤을 중심으로 동남부의 7개 그룹은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서 들여온 말갖춤이다. 그 중에는 타가르 문화(Тагарская культура), 알타이 지역에서 파지리크 문화 이전에 존재했던 마이에미르 문화(Майэмирская культура) 등이 있다. 즉, 이 시기는 기마 문화로 유목 사회가 재편되었으며 이들은 수백㎞ 떨어진 부족 집단끼리 연합체를 형성하여 서로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아르잔 고분의 등장은 무력이 아니라 상징 체계 및 의례로 대표되는 말갖춤의 봉헌을 통해 주변 지역을 지배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제 체계로 재편되는 데에는 물질문화뿐 아니라 새로운 종교 및 의례 체계도 도입될 필요성도 의미한다. 또한, 유목 경제를 도입한 초원의 여러 집단들을 대표하는 새로운 물질문화는 새로운 무기(동검), 말갖춤(삼공 재갈멈치), 전사의 상징(동물 장식) 등으로 대표된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체계와 유목 중심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체계의 성립과도 연관된다.

아르잔 고분의 축조는 기원전 9세기경에 촉발된 생계 경제의 재편에 따라 지역별 유목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무기와 말갖춤을 부장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각지역들은 대등한 정치체가 형성되어 대등한 집단 간의 상호작용권(Interaction)이 형성되던 초기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단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