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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동 고인돌군[光州 新昌洞支石墓群]

한국고고학사전
(신창동고인돌군에서 넘어옴)


신창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신창동 고인돌군, 광주 신창동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1210-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움무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영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1210-3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신창 택지 개발 사업 지구 내에 포함되어 2002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1기와 돌널무덤(石棺墓) 4기가 확인되었고, 그 밖에 삼국 시대 움무덤(土壙墓) 1기가 고인돌을 재사용하여 축조된 것을 확인하였다. 광주의 북서쪽을 흐르는 영산강 주변에 형성된 매결마을의 북쪽에 위치하는 해발 40m 정도의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그 아래로 돌널무덤이 조영되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2.55m, 너비 1.85m, 두께 1m로, 3매의 받침돌(支石)이 받치고 있으며, 묘역 시설(墓域施設)무덤방(墓室)은 확인되지 않았다. 후대에 움무덤이 축조된 점과 고인돌 내부에서 깬돌(割石)들이 약간 노출되었을 뿐 무덤방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하부 구조 없이 덮개돌만 올려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돌널무덤은 장축이 동서 방향으로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게 축조되어 있다. 무덤방은 1호가 길이 1.68m, 너비 0.2~0.36m, 깊이 0.35m, 3호가 길이 1.54m, 너비 0.47m, 깊이 0.35m이다. 벽석은 주로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긴 벽은 2~3매의 판돌을 가로로 세워서 축조한 것, 깬돌(割石)을 이용해 축조한 것, 깬돌과 판돌을 혼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구분된다. 짧은 벽은 1~2매의 판돌을 세로로 세워서 축조한 것, 1매의 깬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것, 석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벽석을 세운 후 잔돌 등을 채워 무덤 구덩이와 벽석 사이를 보강하였으며, 무덤방 바닥은 판돌을 깔아 시설하였다. 3호 돌널무덤은 깬돌 등을 이용하여 돌널 주변을 적석(積石)하여 다른 돌널무덤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주로 고인돌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묘역 시설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으며, 덮개돌 아래에서 개배(蓋杯) 2세트가 출토되었으나 고인돌의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며 후대에 고인돌을 재사용하는 과정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신창동 고인돌군은 영산강 유역에서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공존하여 조사된 유적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과의 관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2년 09월 09일~2002년 10월 08일 광주 신창동 지석묘 2004 호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4). 광주 신창동 지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