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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동 유적(光州 水莞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수완동 유적에서 넘어옴)


수완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수완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111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움무덤, 바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민무늬 토기, 돌검, 돌칼, 민무늬 토기, 돌도끼, 삼각 돌칼, 그물추, 갈돌, 덧띠 토기, 가락바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수민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1110 일원에 위치한다. 광주 수완 택지 개발 사업 지역에 포함되어 2005~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수문 유적은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서 확인되었는데, 4개의 구릉에 각각 집자리들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영산강이 흐르며, 서쪽으로는 충적 평지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풍영정천이 흐른다. 맞은편 구릉에는 광주 장자, 성덕, 신완 유적이 있다. 발굴 조사에서 집자리 34기, 구덩이 45기, 움무덤(土壙墓) 2기, 도랑(溝)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한 종류는 3기가 조사되었는데, 그 중 2기는 중복되어 있다. 구릉 사면부에 자리해서 삭평이 심하게 되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1호 집자리는 남쪽 구릉 사면부에 있다.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고 크기는 길이 15m, 남은 너비 2.4m, 깊이 0.1m이다. 집자리의 서쪽에 화덕 자리, 구덩이, 기둥 구멍(柱孔)이 집중되어 서쪽은 취사나 작업 공간, 동쪽은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호와 2-1호 집자리는 북쪽 구릉의 남사면에 서로 중복되어 있다. 2호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고 길이 18.6m, 남은 너비 3.6m, 깊이 0.3m이다. 내부에는 벽 도랑(壁溝), 화덕, 기둥 구멍이 있으며 벽 도랑을 따라서 기둥 구멍이 일정하게 파져있다. 화덕은 집자리의 동쪽에 5개가 치우쳐 있는데, 1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슷한 간격을 두고 확인되었다. 바리 토기(鉢形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민무늬 토기 편, 돌검(石劍),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製石鏃), 돌칼(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이 집자리들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 종류의 집자리들은 평면 원형과 방형으로 나누어지며 공통적으로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이 집자리들은 크게 3개 군집을 이루는데, 원형 집자리들은 주로 구릉 정상부에 있으며, 방형 집자리들은 정상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한다. 원형 집자리는 모두 14기이다. 크기는 지름 3.5~5.9m, 깊이 0.1~0.3m이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고, 벽 쪽에는 벽 도랑과 기둥 구멍이 있다. 일부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편, 돌칼, 돌도끼(石斧), 삼각 돌칼, 슴베 간 돌살촉, 그물추, 갈돌, 구슬이 출토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모두 15기이다. 크기는 길이 3.5~5.3m, 너비 1~5m, 깊이 0.1~0.3m이다. 바닥 중앙에서 모두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고 일부 집자리 에서는 벽 도랑이 확인되었다. 15호 집자리는 평면 말각 방형에 가깝고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벽 도랑을 따라서 점토를 일정한 너비와 두께로 쌓아 만든 둔덕이 있다. 민무늬 토기 편,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삼각 돌칼,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가락바퀴, 그물추, 갈돌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집자리는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완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와 송국리 문화 단계의 집자리들이 확인되었다. 이른 시기 집자리들은 두 지점에서 따로 확인되고, 송국리 문화 단계의 집자리들은 여러 기가 함께 분포한다. 원형과 방형의 송국리식 집자리들이 같은 공간에서 확인되지만 방형 집자리가 원형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된 경우도 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일렬로 방향성을 갖고서 배치되었고 구릉 정상부의 넓은 공간을 빈 터(空地)로 남겨두었다. 이는 마을의 공공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일대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점유되기 시작했으며, 송국리 문화 단계에는 상당한 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6월~2006년 2월 광주 수문 유적 2008 호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