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동 유적(光陽 城隍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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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광양 성황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591-4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돌도끼, 돌낫, 돌칼, 가락바퀴, 갈돌, 갈판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최성훈 |
설명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591-4 일원에 위치한다. 광양 국도 대체 우회 도로(세풍~중군)가 건설됨에 따라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국도변 좌측 해발 285m의 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60.85m) 일대에 해당하며 남서쪽으로 구봉화산(해발 473m)이 둘러져 있다. 집자리 11기, 구덩이 5기가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삼국, 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해발 62m 야산부에 2기, 해발 35~41m 구릉부에 9기가 확인되어 총 11기가 조사되었다. 3·6호는 삼국 시대 집자리와 중복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 5기, 원형 6기로 야산부에는 방형, 평지부에는 원형이 확인된다. 1·3·5호를 제외한 나머지 집자리는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柱孔)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식 집자리로 2호는 타원형 구덩이만 있다. 9호는 타원형 구덩이 외부 양쪽에 기둥 구멍이 있으며, 이 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에 기둥 구멍이 위치한다.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으며, 4호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가 조각으로 다량 확인되며, 석기류는 돌도끼(石斧), 돌낫(石鎌), 돌칼(石刀), 가락바퀴, 갈돌(碾石棒, 갈판(碾石)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3·4·10호 집자리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3호 2460±30 BP, 4호 2540±30 BP, 10호 2440±30 BP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 전남문화재연구원. (2014). 광양 용장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751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