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리·통정리 유적(唐津 城山里·通丁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당진 성산리·통정리 유적, 당진 성산리·통정리·삼화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 1626와 석문면 통정리 173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나건주 |
설명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 1626와 석문면 통정리 1730 일원에 위치한다. 석문 국가 산업 단지 조성에 따라 2009~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대호방조제와 석문방조제 사이에 형성된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 지대의 북서쪽에 성산리 유적(1지점)과 통정리 유적(2지점)이 위치하며, 남동쪽 일대에 성산리 유적(3-1지점)이 위치한다. 3-1지점에서는 주변 구릉 지대뿐만 아니라 북쪽 멀리 경기도 일대의 해변까지 조망된다. 해당 구릉 지대의 가장 높은 고지대의 해발 고도는 65m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주변 곡저부의 경우 해발 20m 이하이며 약 45m 이상의 비고차를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지형에 해당한다.
각 지점별로 조사된 유구 현황을 살펴보면, 1지점에서는 집자리 49기와 구덩이 27기, 2지점에서는 집자리 4기, 3-1지점에서는 집자리 38기, 구덩이 10기가 조사되었다. 3-1지점 중앙부는 녹지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취락의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집자리 형태는 평지식 또는 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장방형 집자리이며, 모두 91기이다.
유구가 밀집된 1지점과 3-1지점은 500m 정도 거리를 두고 위치하여 청동기 시대 성산리와 통정리 일원에 형성된 구릉 지대 곳곳에는 크고 작은 단위 취락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러한 단위 취락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대규모 취락 사회를 형성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1지점 중앙의 정상부 봉우리에서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주거군이 조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거군은 100~3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주거군은 대체로 평탄한 대지가 형성된 능선부에 입지하는데 일부는 사면 하단에 위치한다. 각각의 주거군 중심부 또는 고지대의 정상부 평탄면에는 가장 규모가 큰 초대형 내지 대형 집자리가 확인된다. 초대형 집자리의 규모는 길이 13~16m, 너비 3~4.2m, 바닥 면적 0.4~0.6㎡ 정도이며, 4~7개의 화덕 자리와 다수의 저장 구덩이 등의 내부 시설이 확인된다.
구덩이는 모두 37기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와 너비 2m 내외이며, 평면 형태는 방형과 원형, 장방형 등이 있다. 방형과 원형의 경우 대체로 바닥 중앙에 평지식 화덕 자리가 확인된다. 장방형의 구덩이는 수가 많지 않으며 내부에 특별한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다. 구덩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별도의 군집을 이루지 않고 집자리 주변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집자리에 부속된 다양한 기능의 옥외 시설로 판단된다.
다양한 완형의 석기 122점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이와 함께 석기 생산에 필요한 원석과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반제품, 부산물인 격지과 제작 도구 등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 250점이 출토되었다. 이 같은 상황으로 보아 자체적인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반제품은 간 돌검, 간 돌살촉, 돌도끼, 돌칼, 돌낫, 돌창, 가락바퀴 등 다양하게 확인되는데, 셰일제의 간 돌살촉 및 간 돌검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인근의 대호지 층에는 셰일 및 점판암, 천매암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셰일제 석재의 취득에 용이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1지점에서는 찰절 기법과 양극떼기 방식으로 가공된 반제품도 다량 확인되었으며, 망칫돌과 모룻돌, 다양한 크기와 암질의 숫돌 등의 제작 도구도 다수 출토되었다. 한편 3-1지점 5호와 22호 집자리의 화덕 자리주변에서는 다량의 격지가 집중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생활면 전체에 걸쳐 격지가 깔려 있는 사례도 있으며 집자리 한쪽 벽면에 원석 또는 반제품을 모아 놓은 양상도 확인된다.
3-1지점 5호 집자리의 퇴적토 내에서는 두꺼운 패각층이 확인되었다. 분석 결과, 대부분 굴 패각으로 판명되었으며 동일 지점 3호 구덩이에서도 동일한 패각층이 확인되었다. 해안가와 3.8km 정도 거리를 두고 유적이 위치하는 점으로 보아 겨울철에 굴을 직접 채취하여 취락 내에서 섭취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짧은 목의 간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민무늬 토기류로는 곧은 긴 목 항아리(直口長頸壺),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얕은 바리 토기, 굽다리 토기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된다. 항아리 모양 토기에는 사격자와 ‘X’자 등의 문양이 시문되었으며, 깊은 바리 토기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겹아가리 ’X’자 구멍무늬, 겹아가리 사격자 구멍무늬, 사격자 구멍무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톱니 구멍무늬, 구멍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확인된다. 구멍무늬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며, 이 외에는 사격자무늬와 ‘X자’ 무늬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적이다.
여러 유구에서 채취된 목탄 시료를 통해 다수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가 확보되었다. 1지점에서는 모두 8개의 측정치가 확보되었는데, 2880±40~2740±40 BP의 연대가 산출되었다. 3-1지점에서는 17개의 측정치가 확보되었는데, 2980±50~2750±40 BP 사이의 연대값이 얻어졌다. 1지점의 연대치와 거의 유사하거나 다소 이른 수치로 볼 수 있다.
이미지
한국고고학저널
- "조개류를 즐겨 먹으며 다양한 석기 제작", 2011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2). 성산리·통정리·삼화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852612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3). 성산리 유적(3-1지점). https://www.riss.kr/link?id=M13477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