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리 유적(松林 石灘里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송림 석탄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 시우지골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팽이 토기,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흙구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 시우지골에 위치한다. 1964~1973년 4차례에 걸쳐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송림시에서 흑교리로 가는 큰 길가를 따라 6㎞ 거리에 있는 곳으로, 월봉산의 한 줄기가 동쪽으로 뻗은 마지막 봉우리 아래에 펼쳐진 구릉 평야에 있는 석탄리 마을 동남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석탄리와 그 언저리에는 송림 당산리, 황주 청운리, 석정리에도 석탄리 유적과 비슷한 성격의 유적들이 분포한다. 유적은 10만㎡에 걸쳐 100여 기 이상의 집자리와 여러 기의 돌널무덤(石棺墓)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집자리 32기를 조사하였으며, 돌널무덤 2기와 그 밖에 신석기 시대 집자리, 고구려 무덤 등을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의 층위는 단순하여 겉흙층 바로 아래부터 문화층이 나타나며 문화층의 두께는 꽤 두터운 편이다.
집자리 32기는 모두 팽이 토기(角形土器)를 만들어 쓰던 시기의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집의 구조와 건축 방법의 발전 과정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첫째 유형의 집자리는 21기로 기둥 구멍이 없고 벽 가장자리에만 작은 구멍들이 있거나 숯으로 된 나무 그루가 확인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6호는 길이 4.25m, 너비 3.35m, 깊이 0.4m, 면적 14.2㎡로 소형이며, 13호는 길이 6.5m, 너비 4.8m, 깊이 0.28m, 19호는 길이 7.7m, 너비 5.3m, 깊이 0.4m로 중형에 속하고, 33호는 길이 9.5m, 너비 5.85m, 깊이 0.2m, 면적 55㎡로 가장 크다. 바닥은 대부분 불 다짐 처리를 하였으며,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판 구덩식 또는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1기씩 있다. 집자리는 대체로 3기가 하나의 단위를 이룬 듯 배치되어 당시 사람들이 세대 공동체(世代共同體)를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출토 유물은 전형적인 팽이 토기와 함께 석기류는 돌도끼, 턱자귀(有段石斧), 돌끌(石鑿),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劒), 돌창(石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찔개살, 달도끼(環狀石斧), 별도끼(星形石斧), 그물추, 가락바퀴 등이 나왔다. 장신구로 쓰던 흙구슬도 보인다.
둘째 유형의 집자리는 9기로, 바닥 중심선을 따라 기둥 구멍이 1열 있으며, 벽 가에 촘촘하게 구멍이 있다. 화덕은 1유형과 같은 형식으로 대부분 중앙에 1개씩이 있으나 37호는 2기가 있다. 2호는 길이 5.5m, 너비 3.2m, 깊이 0.4m, 37호는 길이 6.4m, 너비 3.6, 깊이 0.5~0.6m, 39호는 길이 4.4m, 너비 3.2m, 깊이 0.5~0.6m이다. 출토 유물은 1유형과 비슷한데, 반달 돌칼은 물고기 모양과 함께 장방형의 것도 있다. 39호에서는 토기 속에서 좁쌀과 팥으로 추정되는 곡물이 나왔다.
셋째 유형의 집자리는 2기로, 31호는 길이 9m, 너비 5m, 깊이 0.25~0.7m이며, 32호는 길이 9.8m, 너비 5.15m, 깊이 0.3~0.5m로 대형이다. 바닥에는 구덩식의 화덕이 2기씩 있고, 기둥 구멍은 5개씩 3열로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 구조로 보아 첫째 유형으로부터 셋째 유형으로 가면서 점차 건축 기술이 발전해 나갔고, 건축 기술의 발전 시기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둘째 유형과 셋째 유형은 크기에서도 첫째 유형보다 커지며 정형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돌널무덤은 집자리가 나온 구역 안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길이 1.1m, 너비 0.45m이며, 2호는 파괴가 심해 크기는 알 수 없다. 벽면은 청회색 판돌(板石) 4매를 짜서 맞춘 것으로 널바닥은 큰 판돌 2매를 깔고 그 사이에 작은 판돌들을 채워 넣고 다진 것으로 들림 바닥이다. 부장품은 나온 것이 없다. 발굴을 하기 전에도 밭갈이를 하면서 판돌들이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돌널무덤이 더 많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리기련. (1980). 석탄리유적 발굴보고: 유적발굴보고 제12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https://www.riss.kr/link?id=M10053287
- 박선훈, 리원근. (1965). 석탄리 원시 유적 발굴 중간보고. 고고민속, 3.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