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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포리 유적(密陽 前沙浦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밀양 전사포리 유적에서 넘어옴)


전사포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밀양 전사포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 670, 892-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집자리, 구덩이, 도랑, 기둥 건물터, 붉은 간 토기, 통자루 간 돌검, 민무늬 토기, 홈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간 돌살촉, 송국리식 집자리, 긴 목 항아리, 함안식 붉은 간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 670, 892-3 일원에 위치한다. 밀양 사포 일반 지방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7~2009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와 동서문물연구원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Ⅰ지구(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는 고인돌 5기, 돌널무덤(石棺墓) 7기, Ⅱ지구(동서문물연구원)에서는 고인돌 8기, 돌널무덤 29기, 집자리 3기, 구덩이 3기, 도랑(溝) 4기, 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3기 및 원삼국~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밀양강의 유로 변경에 의해 형성된 하중도를 이루는 삼문동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종남산에서 남류하는 밀양강을 향해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 사이의 곡간지에 해당한다.

Ⅰ지구의 고인돌은 모두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다.묘역은 대부분 유실되었으나, 남아 있는 형태를 통해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덮개돌(上石) 아래에서 무덤방(埋葬主體部)이 확인되지 않아 제단 혹은 묘표석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돌널무덤은 등고선과 나란하게 일정 간격으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벽석(壁石)은 판돌(板石)과 깬돌(割石)을 이용하였으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작은 깬돌을 깔았다. 다-9·10호는 내부에 중·대형 깬돌과 작은 잡석이 바닥까지 꽉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볼때 나무널(木棺)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나-3호는 3중으로 된 뚜껑돌(蓋石)이 설치된 곳의 남쪽 짧은 벽에 유물 부장칸을 따로 만들어 붉은 간 토기를 부장하였다. 부장칸 위에는 2매의 뚜껑돌을 따로 덮어 놓았다. 이외에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도 확인되었다.

Ⅱ지구의 고인돌은 나구역에 덮개돌 3기가 연접해 있고, 다구역에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남-북 방향으로 3개 무리로 모여서 분포한다. 덮개돌 아래에는 주변에는 크고 작은 깬돌이 깔려 있지만 정형성은 확인되지 않고, 무덤방도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덮개돌 주변의 깬돌 사이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3호 덮개돌 아래에는 받침돌(支石)로 추정되는 깬돌 4매가 확인되었다. 다구역 4호는 덮개돌을 중심으로 ‘ᄂ’자 형태의 구획석과 깬돌이 깔려 있으며, 6호 덮개돌 아래에도 깬돌이 일정 범위로 깔려 있는데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구역 5호는 덮개돌 중앙의 남쪽 편에서 무덤방이 확인되었는데, 이중으로 뚜껑돌을 설치한 돌널이다. 돌널은 판상의 깬돌을 가로로 눕혀서 8~9단 정도 쌓았고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돌널 내부 북쪽 긴 벽에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1점과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3점이 출토되었고, 뚜껑돌과 무덤 구덩이 사이 남동쪽 모서리에 붉은 간 토기 1점을 부장하고 편평한 깬돌로 덮었다. 7·8호는 무덤방이 돌널이고 내부에서 붉은 간 토기와 간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깬돌 또는 깬돌과 판돌을 혼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일부는 벽석이 확인되지 않아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깬돌로 축조한 돌널무덤 중에는 최하단석에서부터 남쪽보다 북쪽의 짧은 벽 너비를 좁게 하여 두광 족협(頭廣足狹)의 형태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뚜껑돌은 여러 겹으로 설치하고 맨 위에는 작은 깬돌을 덮었다. 뚜껑돌이 확인되지 않은 31호는 내부에 작은 깬돌이 채워져 있었는데, 나무 뚜껑(木蓋) 상부에 덮은 깬돌들이 안으로 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그대로 사용하거나 민무늬 토기 편을 깐 것도 있지만, 대부분 흑갈색토로 정지하거나 깬돌을 깔았다. 민무늬 토기 편을 파쇄하여 바닥을 깐 형태는 영남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는 드문 사례이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통자루 간 돌검과 홈 자루 간돌검, 슴베 간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18·26호 돌널무덤은 무덤 구덩이와 뚜껑돌 사이에 깬돌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붉은 간 토기를 부장한 뒤 판상 깬돌로 덮어놓았다. 이는 청동기 시대 무덤 축조와 관련된 매장 의례로 이해되며, 마산 진동리 44호와 양산 소토리 7호 무덤에서도 확인된다.

집자리는 송국리식 집자리로, 위의 무덤과 같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원형으로 내부에는 중앙의 구덩이와 그 양쪽에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규모는 5m 내외로 상태가 다소 양호하지 못하여 거의 바닥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유적의 연대는 Ⅱ지구 18호 출토 통자루 간 돌검, 5호와 26호 출토 홈 자루 간 돌검과 슴베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의 형태 등에서 중심 연대는 송국리 단계에 해당된다. 또한 붉은 간 토기의 형태는 목과 몸통의 몸통의 경계가 뚜렷하고 목 부분이 내경(內傾)하는 긴 목 항아리 형태로 밀양-대구 지역의 긴 목 형태가 소위 함안식 붉은 간 토기의 짧은 목 형태로 변화 발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무덤에서 관 내외에 다양한 유물의 부장 위치는 송국리 문화 분포권의 영남 지역 무덤에서 공통적인 양상이지만, 밀양강 본류의 사포리 유적과 제대리 유적, 동천 유역의 가인리 유적과 원서리 유적, 낙동강 본류 주변의 금포리 유적귀명리 유적에서는 소지역별로 공유된 무덤 축조 의례에서 차이를 보여주어 청동기 시대의 다양한 매장 의례를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7년~2009년 밀양 사포리유적 2010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