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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동 유적(蔚山 梅谷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매곡동 330-2 유적에서 넘어옴)


매곡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매곡동 유적, 울산 매곡동 생활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산90-3, 344-1,490-1, 842, 864, 874-2 일원
관련 정보
성격 생활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화덕 자리, 깊은 바리 토기, 돌창, 돌살촉, 돌대팻날, 조개날 돌도끼,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간 돌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기념물 울산 매곡동 생활 유적.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산90-3, 344-1,490-1, 842, 864, 874-2 일원에 위치한다. 공동 주택, 산업 단지, 학교 신축, 도로 건립으로 2003~2012년까지 여러 기관이 조사하였다. 유적의 동쪽에는 북에서부터 관문산-동대산-무룡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서쪽의 동천강까지 여러 갈래의 구릉으로 뻗어 있으며, 유적은 모두 구릉의 능선부 혹은 능선 아래의 평탄면에 위치한다.

매곡천 동쪽 구릉에 매곡동 41-22 유적이 위치하며, 매곡동 Ⅰ지구와 연결된다. 매곡동 Ⅲ지구는 Ⅲ-2지구, 매곡동 330-2 유적과 연결되는 같은 구릉이다. 매곡동 Ⅳ지구는 Ⅳ-2지구와 연결되는 구릉이다. 매곡천 서쪽의 매곡동 508 유적은 Ⅰ·Ⅱ지구가 인접해 있고 그 남쪽에 매곡동 신기 유적Ⅱ의 가지구와 매곡동 508 유적 Ⅲ지구가 인접한다. 신기 유적Ⅱ 나지구의 아래쪽 구릉이 신기 유적Ⅰ과 신기 유적Ⅲ의 북쪽 구릉 일부가 연결된다. 신기 유적Ⅱ 다지구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조사한 신천동 594 유적과 연결된다. 신기 유적Ⅰ·Ⅱ와 매곡동 508 유적 Ⅲ지구 남서쪽에는 울산발전연구원에서 조사한 신천동 냉천 유적·냉천 유적Ⅱ가 인접하여 위치한다.

매곡동 유적(매곡동 산 90-3, 344-1)은 2003~2004·2005년에 조사하였다. Ⅰ지구에서 집자리 9기, 구덩이 1기, Ⅱ지구에서 집자리 23기, 구덩이 5기, Ⅲ지구에서 집자리 12기, 도랑(溝) 1기, Ⅲ-2지구에서 집자리 9기, 구덩이 32기, 도랑 2기, Ⅳ지구에서 집자리 22기, 둘레 도랑(周溝) 1기, 도랑 1기, 구덩이 1기, Ⅴ지구에서 집자리 2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의 형태는 방형, 장방형이며, 규모는 중·소형에 해당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설치되었으며,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排水口)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 또는 바닥에 바로 불을 지핀 평지식이다. 기둥 구멍은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 Ⅲ지구 8호는 8주식이다. 벽 도랑은 장방형 집자리에 ‘ㅁ’, ‘ㄷ’자 모양으로 설치되었고, 소형의 방형 집자리에서는 ‘ㄱ’자 모양으로 확인되며, 설치되지 않는 것도 있다. 출토 유물은 Ⅰ지구에서 구멍무늬(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결합되거나 민무늬의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돌창(石槍), 돌살촉,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조개날 돌도끼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Ⅲ지구 4·19·20호는 능선에 위치하고 대부분 남쪽 사면에 2열로 분포한다. 구릉의 능선이 의례 공간으로 이용되어 의도적으로 비웠을 가능성이 있으며 북쪽의 바람을 피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2·3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돌살촉이 서로 접합되어 두 집자리가 동 시기에 폐기되었다. 3호를 비롯하여 집자리 내부에 돌이 쌓여 있는 예가 많이 있다. 최근 돌무지(積石)가 확인되는 집자리는 폐기될 때 무덤으로 전용(轉用)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3호에서는 낟알무늬와 '十'자 무늬가 목 부분에 새겨진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孔列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반달 돌칼, 조개날 돌도끼, 간 돌검,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Ⅳ지구는 시굴 조사에서 상태가 양호한 유구가 다수 확인되어 구릉의 가운데 부분이 보존되었다. 둘레 도랑 1기는 연암동식 집자리의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지만, 내부에 집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에서는 의례 유구라는 견해와 둘레도랑무덤이라는 견해도 있다. 출토 유물은 무늬가 없거나 구멍무늬, 낟알무늬, 구멍무늬+낟알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등의 토기류와 조개날 돌도끼, 돌대팻날, 반달 돌칼, 숫돌(砥石)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는데 도끼류의 비율이 높다. Ⅴ지구는 Ⅲ지구와 Ⅳ지구 사이에 있는 구릉의 끝 자락에 해당한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편, 조개날 돌도끼, 숫돌,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Ⅰ~Ⅴ지구의 시기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한다. Ⅰ지구 4호, Ⅱ지구 3호 집자리를 비롯하여 일부는 초기 철기 시대일 가능성이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Ⅰ-2호 30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30년), Ⅰ-9호 22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300년)이다. Ⅱ-10호 28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20년), Ⅱ-15호 26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60년), Ⅱ-20호 276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0년)이다. Ⅲ지구와 Ⅲ-2지구의 일부 집자리는 그 이전 시기일 가능성도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Ⅲ지구 1호 28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년), 3호 28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50년), 6호 289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70년) 등이다. Ⅳ지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8호 28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60년), 9호 27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년), 12호 28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년) 등이다.

매곡동 신기 유적(매곡동 490-1, 497, 498-1)은 2003~2004년 조사하였다. 신기 유적Ⅰ에서는 집자리 25기, 둘레 도랑 8기, 구덩이 3기, 신기 유적Ⅱ에서는 집자리 4기, 도랑 4기, 신기 유적Ⅲ에서는 집자리 11기,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매곡천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동쪽에 위치하는 유적보다 해발 고도가 낮고 구릉이 상대적으로 평탄한 편이다. 신기 유적 Ⅰ은 구릉의 능선부에 둘레 도랑 5기가 분포하고 집자리는 구릉 사면에 위치한다. 둘레 도랑 8기는 연암동식으로, 3~5호는 연접하고 6~7호는 인접해서 위치한다. 1호 구덩이는 형태가 타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3.5m 내외이다. 내부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短斜線文土器)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등이 출토되어, 토기 소성 유구로 추정된다. 시기는 1호 구덩이와 12호 집자리를 비롯한 일부 가는 장방형 집자리가 흔암리·역삼동 단계에 해당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집자리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된다. 신기 유적Ⅱ는 신기 유적Ⅰ·Ⅲ으로 진입하는 도로 부지에 해당된다. 세 구역에서 집자리 4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양상은 주변 유적과 같다. 신기 유적Ⅲ은 계곡부를 사이에 두고 양쪽 구릉 사면부에 집자리가 위치한다. 3·6·7호 등 규모가 큰 집자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상대적으로 송국리·검단리 단계 이전 시기의 집자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매곡동 508 유적(매곡동 842, 855)은 2005년 조사하여, 집자리 43기를 확인하였다. 세 개의 구릉에 분포하는데 대부분 평탄한 중앙부는 비워 두고 양쪽 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이며, 내부 시설은 인접한 유적과 동일하다. 벽 도랑 내에 벽 기둥 구멍이 설치된 집자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벽 마감재를 설치하는 기능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시기는 가는 장방형이 흔암리·역삼동 단계에 해당되며, 그 중 화덕 자리가 1개인 일부 집자리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의 유력 개인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 방형·장방형은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한다.

매곡동 330-2 유적(매곡동 864)은 2007~2008년 조사하여, 집자리 53기, 구덩이 14기, 둘레 도랑 3기, 도랑 7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의 형태는 방형, 장방형, 가는 장방형이다. 1·8·12·17·40·45호 집자리는 화덕 자리가 2개인데 17호만 가는 장방형이며 나머지는 장방형에 가깝다. 45호는 면적이 31.5㎡로 유적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다른 유적과 비교해 볼 때 규모가 큰 대형 집자리는 없다. 매곡천 동쪽에 있는 유적의 집자리 규모가 서쪽에 있는 유적보다 작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집자리의 바닥 처리는 요철 면에 점토를 채운 것, 점토로 요철 면을 메운 후 그 위에 점질토를 2~3㎝ 깔아 사용한 것, 바닥에 점질토를 깔고 그 위를 불로 다진 것 등으로 나누어진다. 기둥 구멍은 41기에서 확인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연한 배치를 보이는 것은 28기이다. 4주식, 6주식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8주식이다. 둘레 도랑 3기는 연암동식 집자리의 외곽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이며, 내부에 집자리는 없다. 유적의 시기는 대부분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하며, 화덕 자리가 2개인 일부 집자리는 그 이전 시기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5호 27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0~800년), 33호 27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790년), 37호 27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0~800년), 42호 27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20~820년), 49호 27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820년), 53호 27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820년)이다.

매곡동 41-22 유적(매곡동 874-2)은 2012년 조사하여, 집자리 4기를 확인하였다. 매곡동 유적 가운데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유실이 심하며, 방형·장방형의 중·소형 집자리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에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배수구 등이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출토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 조개날 돌도끼, 돌창, 배 모양 석기(船形石器)로 불리는 돌살촉, 미완성 석기, 숫돌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구조와 유물을 통해 시기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한다.

매곡동의 유적을 통해서 이 일대에 대규모 마을 유적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곡천을 경계로 서쪽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집자리가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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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시·발굴조사 2002년 6월 1일~2004년 10월 5일 울산매곡동유적Ⅰ·Ⅱ·Ⅲ지구 2005 울산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2002년 12월 23일~2003년 1월 19일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Ⅰ·Ⅱ 2006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3년 9월 8일~2004년 6월 7일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Ⅰ·Ⅱ 2006 울산문화재연구원
시·발굴조사 2002년 6월 1일~2004년 10월 5일 울산매곡동유적Ⅳ지구 2006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 8월 17일~2005년 12월 27일 울산 매곡동 508번지 유적 2007 울산발전연구원센터
시굴조사 2004년 4월 12일~2004년 5월 6일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Ⅲ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4년 9월 21일~2005년 5월 31일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Ⅲ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2년 9월 11일~2012년 10월 16일 울산 매곡동 41-22번지 유적 2014 울산발전연구원센터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울산광역시 기념물 울산매곡동생활유적 (울산매곡동생활유적)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5). 울산매곡동유적Ⅰ·Ⅱ·Ⅲ지구.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6).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Ⅰ·Ⅱ.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6). 울산매곡동유적Ⅳ지구.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7). 울산매곡동신기유적Ⅲ.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07). 울산 매곡동 508번지 유적.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14). 울산 매곡동 41-22번지 유적.
  • 한국문물연구원. (2010). 울산 매곡동 330-2번지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