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가하마 유적(下関 土井ヶ浜遺跡)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일본 |
| 소재지 |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 시모노세키시(下関市) 호호쿠정(豊北町)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분 |
| 키워드 | 야요이 시대 중기의 무덤 유적, 야요이 시대의 사람 뼈, 돌널무덤, 배석묘, 움무덤, 굴장, 신전장, 합장, 조개 팔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임지영 |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 시모노세키시(下関市) 호호쿠정(豊北町)에 위치한다. 야요이 시대 중기의 무덤 유적으로 해발 6m의 사구에 입지한다. 1931년 조사로 학계에 알려졌고, 1953년 규슈 대학(九州大学) 의학부 교수인 가나세키 다케오(金関丈夫)를 중심으로 5년간 조사되어 유적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최근까지 19차례의 학술 조사가 실시되어 300구가 넘는 야요이 시대의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이 중 약 80구의 사람 뼈를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도이가하마유적인류학뮤지엄(土井ヶ浜遺跡人類学ミュージアム)’에서 전시하고 있다. 출토된 사람 뼈는 상태가 양호한데, 특히 사람 뼈의 형질이 일본의 조몬인과는 달라서 도작 문화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의 무덤으로 주목을 받았다.
유적은 동서 약 120m, 남북 약 40m이며, 인위적으로 만든 도랑(溝)을 경계로 동서 2지구로 나뉜다. 동쪽 지구에서 약 200구, 서쪽 지구에서 약 30구의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동·서쪽 지구에서 각각 무덤의 구조는 차이가 있다. 서쪽 지구에는 사람 뼈가 열상(列狀)으로 매장되는데 반해 동쪽 지구는 사람 뼈가 열상으로 배열되는 곳도 있지만 어느 정도 군을 이루며 분포한다. 유체를 열상으로 매장하는 무덤 구조는 북부 규슈나 한반도 남부 지역 유적에서도 다수 확인되어 해당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무덤 구조는 야마구치현 나카노하마 유적, 시마네현 고우라 유적, 톳토리현 나가세타카하마 유적(長瀬高浜遺跡) 등 산인(山陰) 지역 연안의 각지에서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이주 경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매장 방식은 단독 매장 사례가 많지만 합장이나 다수의 사람 뼈를 모은 합장 예도 확인되는 등 다양하다. 매장 시설은 돌널무덤(石棺墓), 시신 주변에 판돌(板石)을 둔 배석묘(配石墓), 움무덤(土壙墓)으로 구분된다. 움무덤 중에는 무덤 구덩이의 네 모서리에 돌을 둔 것도 있다. 각 사람 뼈의 머리 방향은 모두 동쪽이지만, 유적 서쪽에는 머리 방향이 바다를 향하는 사례도 있다. 매장 방법은 굽혀묻기(屈葬)와 펴묻기(伸展葬)가 확인되어 매장 방향의 규제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껴묻거리 및 장신구에는 토기 외에 난카이산(南海産) 고호우라(ゴホウラ)나 이모가이(イモガイ)를 사용한 조개 팔찌(貝釧), 권패(卷貝)를 이용한 반지(指輪)ㅡ, 석제 대롱옥(管玉), 유리옥, 조개 장식 옥(貝製玉) 등이 있다. 열대 해역의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유물이 다수 확인되어 도이가하마 유적 사람들이 아마미오섬(奄美大島)이나 오키나와의 섬과 교류했다는 증거가 된다. 특히 고호우라제 장신구 중 도이가하마 유적에서만 확인되는 양식이 있어 주목을 받았다.
출토된 사람 뼈 대부분에서 발치가 관찰되며, 12~13세경 성인식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발치 계열에 따라 매장 지점, 매장 시설, 장신구 및 껴묻거리의 보유 상황, 구성인 수에도 차이가 있다. 또한 소수이지만 비취제 옥과 난카이산 조개 팔찌 등 원거리 교역품을 착장하고 있는 아이가 존재한다. 지위가 우위에 있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장신구를 착장하고 있는 아이의 존재는 당시의 계층사회 가운데 세습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외에 1954년 2차 조사에서 확인된 124호 무덤의 사람 뼈가 주목을 받았다. 장년 남성 사람 뼈로 가슴과 허리에서 간 돌살촉 11점, 상어 이빨로 만든 뼈살촉(骨鏃)이 2점 확인되어 가까운 거리에서 활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람 뼈는 도이가하마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싸운 전사로 추정하여 ‘영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뼈에 남겨진 화살의 사입(射入) 각도를 검토해 보면 서 있는 상태에서 활을 맞은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화살이 존재한다. 또한, 오른팔에 고호우라제 팔찌 2점을 착장하고 있어 사제자를 매장한 후 주술적 행위가 시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적은 1962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도이가하마야요이파크土井ヶ浜弥生パーク’로 정비되었다.
참고문헌
- 乗安和二三. (2000). 土井ヶ浜遺跡. 山口県史資料編, 考古1.
- 土井ヶ浜遺跡, 人類学ミュージアム. (2014). 土井ヶ浜遺跡第1–12次発掘調査報告書.
- 土井ヶ浜遺跡, 人類学ミュージアム. (2017). 土井ヶ浜遺跡の弥生時代人骨①.
- 山田康弘. (2007). 土井ヶ浜遺跡. 日本の考古学(上). 学生社.
- 山田康弘. (2014). 山陰地域における弥生時代前期の墓地構造. 国立歴史民俗博物館研究報告, 185, 11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