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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리 고인돌군[高敞 竹林里支石墓群]

한국고고학사전
(도산리 고인돌군에서 넘어옴)


죽림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및 아산면 상갑리 일대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덧띠 토기, 붉은 간 토기,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세계 문화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 사적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및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 위치한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은 크게 3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1지구인 상갑리 고인돌군(서쪽, 석치동마을 일원), 2지구인 죽림리 고인돌군(중앙~동쪽, 매산마을 일원), 그리고 3지구인 도산리 고인돌군(남쪽, 지동마을 일원)은 2지구에서 남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독립된 구릉에 있다. 고인돌군은 화시봉(해발 403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인 성틀봉(해발 158m)과 중봉(해발 199m)의 남쪽 산기슭에 주로 분포하며, 앞으로 고창천 흐르고 있다.

고인돌은 상갑리, 죽림리 일대의 442기의 고인돌과 도산리 고인돌 5기를 포함하여 447기가 무리지어 분포하며, 이는 단일 구역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최대 밀집도를 보인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고인돌 형식이 대부분 확인되는데, 탁자식(卓子式)과 지상 돌덧널식(地上石槨式), 바둑판식(碁盤式), 덮개식(蓋石式) 등 외형적으로 크게 구분되는 형식뿐만 아니라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받침돌(支石)무덤방(墓室)의 형태, 묘역 시설(墓域施設) 등이 상호 결합되어 고인돌의 발생과 변화, 성격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에 대한 학술 조사는 1965년 국립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1968년 3기가 발굴 조사되었고, 1983년 전북대학교박물관 고창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1990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지표 조사 등을 통해 고창 지역 고인돌의 개략적인 분포와 형식 등에 대한 기초 자료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1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고창 고인돌의 형식 변천 및 성격 규명과 지정 보존, 학술 교류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발굴 조사한 후 복원하였다. 이후 1999년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성틀봉을 중심으로 덮개돌(上石) 채굴지를 조사하였고, 2000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의 보존과 정비 방안 마련을 위해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5년 태풍 루사에 의한 피해로 인해 원광대학교박물관의 긴급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0년에는 도산리 고인돌군 정비·활용 방안 마련을 위해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최근 2019년에는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고인돌의 보존 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황 조사와 분석을 하여 유적의 보존 방안을 수립하였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은 총 447기가 보고되었는데, 1지구(상갑리) 4개군 181기, 2지구(죽림리) 6개군 261기, 3지구(도산리) 1개군 5기이다. 하지만 1990년대 지표 조사 당시에 유적 내에 108기 정도가 파괴 및 매몰되었음이 보고되기도 하여 이들 고인돌까지 포함하면 약 555기 정도의 고인돌이 축조됐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입지와 분포는 일반적인 고인돌의 입지 조건과 유사한 편이다. 즉, 남사면의 산기슭에 자리하면서 등고선 방향으로 2~3열을 이루며 분포한다. 이러한 분포 양상은 주변에 위치한 고창천 방향과 같다. 고인돌은 해발 고도 20~65m 사이에 분포하며, 해발 고도 25m 정도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고인돌의 형식은 외형적으로 크게 탁자식, 바둑판식, 덮개식, 지상 돌덧널식(변형 탁자식) 등이 보이며, 다수는 받침돌이 놓여진 바둑판식이다. 세부적으로는 받침돌의 형태와 수량, 위치, 무덤방의 위치, 형태, 묘역 시설 유무 등에 따라 세분된다. 이 중 탁자식은 도산리의 2443호와 죽림리의 2509호 총 2기가 확인되었다. 2443호는 서북한이나 요령 지역의 전형적인 형태인 덮개돌과 같이 처마가 넓고 편평하며, 지상으로 노출된 벽석의 크기가 큰 모양이나, 2509호는 지상으로 노출된 무덤방의 높이가 낮고 덮개돌의 두께가 두꺼운 편으로, 이는 입체화되면서 거대화되는 바둑판식 고인돌 형태와 유사하다. 지상 돌덧널식은 판돌(板石)로 돌널형(石棺形) 무덤방을 지상에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힌 구조이며 일부에서는 무덤방 옆으로 받침돌을 놓은 것도 확인된다. 이 형식은 주로 고창지역에 분포하여 고창식 고인돌 또는 변형 탁자식으로도 불리며, 총 46기가 확인되었다. 바둑판식은 수 개의 받침돌을 놓은 후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며, 총 249기가 확인되었다. 판돌이나 깬돌割石 등을 이용하여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거나, 무덤방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 있다. 또한, 덮개식은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은 구조로, 총 150기가 확인되었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의 특징 중 하나는 덮개돌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한 군집 내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며, 평면과 단면 형태에서 각각 장방형, 제형, 삼각형, 타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나 장방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바둑판식의 덮개돌은 두꺼우면서 거대화되고 입체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매장 시설인 무덤방은 일부 발굴 조사 및 고인돌의 하부에서 노출된 무덤방을 통해 살펴보면, 크게 돌널형과 돌덧널형(石槨形)으로 분류된다. 또한, 고창지역의 고인돌의 특징과 같이 유물이 매우 빈약한 편이나, 지표 상에서 간 돌검 자루편 1점 및 재해(災害) 고인돌 발굴 조사 등에서 민무늬 토기 편 및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인돌 덮개돌 채굴지는 유적이 위치하는 성틀봉과 중봉에서 총 23개소가 확인되었다. 1지구(상갑리 고인돌군-성틀봉 일원)와 2지구(죽림리 고인돌군-중봉 일원)에서 각각 15개소, 8개소가 확인되었다. 채굴지는 채석이 용이한 지역을 선택하여 산의 능선 방향을 따라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1지구(상갑리 고인돌군)는 유적의 서쪽 구역에 해당하며, 행정구역상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와 봉덕리 일원에 위치한다. 석치동마을 뒷편에 자리하고, 성틀봉의 남쪽 사면 산기슭을 따라 해발 20~52m 사이에서 분포한다. 탁자식은 확인되지 않았고, 지상 돌덧널식, 바둑판식, 덮개식 등이 확인되었다. 1지구는 크게 4개군으로 세분되며 총 181기의 고인돌이 보고되었는데, 지상 돌덧널식 21기, 바둑판식 118기, 덮개식 42기로 확인되었다.

1-1군은 유적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42기의 고인돌이 지상 돌덧널식 9기, 바둑판식 31기, 덮개식 2기로 분류되었다. 무덤방이 노출된 고인돌은 지상 돌덧널식으로, 2기(1109호, 1120호) 정도이다. 받침돌이나 뚜껑돌은 없고 무덤방은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돌널형으로 축조하였다. 1-2군은 43기의 고인돌이 지상 돌덧널식 7기, 바둑판식 33기, 덮개식 3기로 분류되었다. 무덤방이 노출된 고인돌은 지상 돌덧널식으로, 7기 정도이고, 덮개돌 아래 뚜껑돌이 없이 바로 돌널형의 무덤방이 덮개돌을 받는 구조이나, 일부에서 받침돌이 2중으로 놓여 있거나, 5개 정도가 받치고 있는 것도 확인되었다. 1-3군은 49기 정도가 확인되었는데, 지상 돌덧널식 1기, 바둑판식 35기, 덮개식 13기로 분류되었다. 가장 큰 고인돌인 1321호가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고, 그 아래로 등고선 방향으로 2열을 이루고 있다. 1-4군은 47기가 확인되었는데, 지상 돌덧널식 4기, 바둑판식 35기, 덮개식 13기로 분류되었다. 가장 큰 것은 1419호(길이 3.24m, 너비 1.93m, 두께 0.94m)이고, 가장 작은 것은 1413호(0.98m, 0.96m, 0.65m)이다.

1지구(상갑리 고인돌군) 발굴 조사는 1965년 국립박물관에서 3기를 조사하였다. A호는 덮개식으로,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길이 2.15m, 너비 1.65m, 두께 0.8m 정도이다. 무덤방은 돌널형으로, 길이 0.9m, 너비 0.5m, 두께 0.3m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이용하였다. B호는 4개의 받침돌을 받친 바둑판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2.1m, 너비 1.8m, 두께 0.65m 정도이고, 그 아래의 중앙부에서 돌덧널형의 무덤방이 확인되었으며 그 주위를 돌을 깔아 묘역 시설을 마련했다. 무덤방은 길이 1.5m, 너비 0.4m, 깊이 0.35m 정도이고, 바닥은 작은 깬돌을 깔았다. C호는 바둑판식이며 무덤방 주위는 적석 시설로 보강되었다. 덮개돌은 장방형으로 길이 1.6m, 너비 1.2m, 두께 0.4m 정도이다. 무덤방은 돌널형이며 길이 1.25m, 너비 0.5m, 깊이 0.4m이며 바닥은 편평한 작은 깬돌을 깔았다.

출토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 구릉에서 간 돌검 손잡이(柄部) 편 1점이 지표상에서 채집되었다.

2지구(죽림리 고인돌군)는 죽림리 매산마을과 송암마을 사이에 위치한다. 성틀봉과 중봉의 남쪽 사면부에 자리하며, 6개군으로 나누어져 총 261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1990년 조사 결과, 지상 돌덧널식 25기, 바둑판식 128기, 덮개식 107기로 분류되었다. 해발 19~67m 사이에 분포하고, 대부분 구릉 방향인 등고선방향으로 따라 열을 이루며 분포하나, 2-3군의 서편의 경우는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하는 것도 있다.

2-1군은 총 39기가 확인되었는데, 지상 돌덧널식 4기, 바둑판식 17기, 덮개식 18기로 분류되었다. 덮개돌은 길이 0.91~4.68m, 너비 0.68~3.02m, 두께 0.25~2.42m 정도이다. 무덤방이 노출된 고인돌은 없고, 받침돌의 크기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6기 정도로 기둥 모양柱形과 대형 등으로 구분된다. 2-2군은 전체 고인돌군의 중앙부인 성틀봉과 중봉 사이의 곡간지에 자리하며, 가장 낮은 지점까지 고인돌이 분포한다. 지상 돌덧널식 4기, 바둑판식 39기, 덮개식 23기로 분류되어 총 66기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길이 1.08~5.49m, 너비 0.68~3.7m, 두께 0.28~2.38m 정도이다. 받침돌의 형태는 기둥 모양, 장방형, 판돌형 등이 확인되었다. 2-3군은 총 62기가 지상 돌덧널식 16기, 바둑판식 14기, 덮개식 32기로 분류되었고, 가장 높은 지점까지 고인돌이 분포한다. 덮개돌은 길이 1.05~4.1m, 너비 0.67~2.22m, 두께 0.27~1.68m 정도이다. 이곳 고인돌은 16기(2318~2333호)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조사 결과, 대부분 지상 돌덧널식으로, 일부에서는 지상식의 무덤방과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받침돌 등을 받치는 등 바둑판식과 결합한 형태를 보였다. 무덤방은 지상에 판돌 1매씩 네 벽을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바로 올렸으며 주위로 묘역 시설을 마련하였다. 2-4군은 매산마을 앞 작은 길을 따라 41기가 지상 돌덧널식 1기, 바둑판식 25기, 덮개식 15기로 분류되었으나, 2000년도 조사에서 8기가 이동·파괴되어 37기가 남아 있다. 덮개돌은 길이 1.1~6.22m, 너비 0.82~5.42m, 두께 0.33~3.54m 정도이다. 가장 큰 고인돌은 2406호(길이 6.22m, 너비 5.42m, 두께 2.52m)로, 전체 죽림리 고인돌군에서 가장 크다. 무덤방이 노출된 것은 2428호로, 지상 돌덧널식이다. 탁자식과 같이 벽은 잘 다듬어진 판돌 1매씩으로 축조되었으나, 서벽은 유실되었다. 덮개돌은 무덤방인 벽석 위에 바로 올려져 있고, 기둥 모양 받침돌 1매가 덮개돌을 받치고 있다. 발굴 조사는 2003년 태풍 루사로 인한 재해 피해로 인해 2기의 고인돌(2419, 2433호)과 주변에서 돌널형의 무덤방 1기가 조사되었다. 2419호는 4개의 기둥 모양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식으로 추정되나, 조사 당시에는 완전히 무너져 서편의 받침돌 2기는 이미 덮개돌 밖으로 밀려나 있었으며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2433호는 바둑판식으로, 덮개돌 형태는 웅크린 두꺼비가 뛰어오르려는 모습이다. 받침돌은 사방에 한 개씩 두고 중앙에 하나 더 두었으나, 남쪽의 받침돌은 이미 유실됐다.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고 1단으로 깔은 묘역 시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묘역 시설 위에서 민무늬 토기 편 다수와 붉은 간 토기 편 1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지하식으로 판돌을 세워 만든 돌널형의 무덤방(길이 1.9m, 너비 0.3m, 깊이 0.36m)은 2433호에서 동쪽으로 8.8m 떨어진 곳에서 확인되었다. 주변 경사면에서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있었고, 무덤방의 주변에서 이중의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어 고인돌 하부 구조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 1점이 부장되어 고인돌이 초기 철기 시대까지 축조되었음을 밝혀주는 자료이다. 2-5군은 총 21기로, 탁자식 1기, 바둑판식 16기, 덮개식 4기로 분류되었다. 덮개돌은 길이 1.13~3.36m, 너비 0.86~2.54m, 두께 0.41~1.53m 정도이다. 이곳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탁자식(2509호)과 기둥 모양 받침돌 등의 바둑판식, 덮개식 등 다양한 형식이 한 곳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탁자식은 2m 이상 되는 판돌을 세워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벽과 덮개돌이 맞닿는 윗부분을 V형의 홈을 내어 전면이 덮개돌과 닿지 않도록 했고, 덮개돌의 두께가 바둑판식의 것과 같이 두꺼운 편으로 입체화된 형태이다. 2-6군은 2-5군이 위치한 구릉의 동쪽에 인접한 산사면부에 분포한다. 바둑판식 17기, 덮개식 15기로 분류되어 총 32기가 보고되었으나 2000년 조사에서는 밭 개간 등으로 인해 3기가 파괴되어 29기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길이 1.19~4.6m, 너비 0.79~3.32m, 두께 0.98m 정도이다.

3지구(도산리 고인돌군)는 2지구의 죽림리 매산마을에서 남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독립된 구릉 상(해발 43m)에 자리한다. 고창읍에서 아산면 소재지 방면으로 796번 지방도를 따라 4㎞ 정도 가다보면 북편으로 도산리 마을에 있고, 고인돌은 마을 안 구릉에 자리한다. 1982년 전라북도 기념물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포함하여 죽림리 고인돌군과 함께 보존·관리되고 있다. 전형적인 탁자식 1기(2443호), 바둑판식 3기(2444, 2446, 2447호), 덮개식 고인돌 1기(2445호)가 분포한다. 2443호 고인돌은 전형적인 탁자식으로 장독대 고인돌로도 알려져 있다. 2매의 거대한 판돌을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편평한 덮개돌을 얹은 형태로 양쪽 마구리벽은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은 길이 3.6m, 너비 3.1m, 두께 0.38m 정도이다. 받침돌과 덮개돌 사이에 판판한 돌(길이 0.2m, 너비 0.15m, 두께 0.1m)을 이용해 보강한 흔적이 있으며, 빈 틈사이에 흙이 메워져있다. 받침돌은 판돌 2매가 남아 있는데, 길이 3.14m, 너비 1.64m, 두께 0.3m, 길이 3.07m, 너비 1.68m, 두께 0.26m 정도이고, 벽석 사이는 0.65m 간격을 두고 있다. 이외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2.41~2.77m, 너비 1.35~2.18m, 두께 0.09~0.75m 정도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장타원형, 삼각형이고 단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별다른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바둑판식인 2444호의 덮개돌 아래에서 받침돌 3매가 확인되었다.

고인돌 채굴지는 성틀봉(1지구)과 중봉(2지구)의 남사면(7~8부 능선)의 암반이 넓은 범위에서 고르게 걸쳐 있는 능선부에서 확인되었다. 1지구는 해발 60~115m 사이이고, 2지구는 70~170m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1지구 50~2500㎡, 2지구 150~1200㎡정도이다. 채굴지 조사는 1999년 전주대학박물관 실시하여 1지구 15개 지점, 2지구 8개 지점, 총 23개소를 확인하였다. 이 일대에서는 돌이 쪼개진 흔적 등 커다란 바위에서 덮개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떼어내기 위한 흔적들이 보인다. 각 지점은 암반의 갈라진 틈(節理面)이 잘 진행되어 암반에서 채굴하기에 용이한 곳으로, 고인돌 덮개돌로 사용하기 위해 떼 낸 큰 돌들이 많이 확인되며, 채굴로 인해 돌이 떨어져 나가 평탄면을 이루는 곳도 상당히 자리한다. 채굴에 있어 암석의 갈라진 틈을 최대한 이용하였고, 틈이 없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힘과 노력을 들인 인공적인 타격 방법이 관찰되었다. 돌을 떼어낸 방법과 순서는 남북을 축으로 제1 절리면(節理面)의 틈을 기준으로 제2 절리면에 타격을 가하여 떼어냈다. 타격 방법도 절리면의 형태, 암석의 위치에 따라 적합한 타격 부위를 파악하여 떼어냈다. 타격점 부위는 ①양 끝 2점, ②중앙 부위 1점, ③중앙 부위 2점, ④모서리 전면, ⑤양 끝과 중앙 부위의 3점, ⑥전면에 4점 이상 등 6가지 방법이 확인된다. 이 일대의 암석은 데사이트질 응회암(凝灰岩)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알카리화강암, 안산반암, 데사이트유문암 등이 일부 존재하는데, 고인돌 덮개돌로 사용된 암질과 채굴지의 암질이 분석 결과 동일하였다. 따라서 고인돌 덮개돌을 채굴하기 위해서 고인돌 축조 위치, 고인돌 덮개돌의 운반 경로, 덮개돌의 크기 등을 사전에 파악하여 채굴 방법과 순서 등이 계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창 죽림리 고인돌군은 지형상의 위치, 덮개돌 재료의 확보성, 채굴 시 노동력 등의 모든 조건이 고인돌 조성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이다.

고인돌군은 성틀봉과 중봉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남으로는 고창천과 주변으로 발달된 충적 평야가 자리하는 등 유적이 형성되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 유적의 특징은 구릉을 따라 447기 이상의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무리지어 분포하여 단일 구역으로는 세계에서도 가장 큰 무리를 이루며 확인되나, 부장 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또한, 고인돌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의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즉,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곳으로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선사 시대 문화상과 사회 구조, 정치 체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정신 세계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 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기준 제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 유산 가치를 인정하여 2000년 12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죽림리 고인돌군의 고인돌은 탁자식과 지상 돌덧널식, 바둑판식, 덮개식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축조되었는데, 각 형식에서도 다양한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탁자식에서는 입체화되는 덮개돌 및 낮은 벽석이 사용되었고, 바둑판식도 기둥 모양 받침돌과 판돌형 받침돌 등의 혼용, 지상 돌덧널식과 기둥 모양 받침돌의 결합 등 다양한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다만, 수백기의 고인돌에 비해 소수만이 발굴되었고 부장 유물도 매우 빈약하여 고인돌의 축조 집단의 성격이나 축조 연대 등을 파악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만, 다양한 고인돌의 축조 방식과 토기 편 등을 통해 추정해 보면, 고인돌군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부터 덧띠 토기 문화 단계까지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지표조사 1991년 고창 죽림리일대지석묘군 지표조사보고서 1992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발굴조사 1992년 고창 죽림리지석묘군 발굴조사보고서 1993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지표조사 2000년 고창 고인돌 유적 지표조사보고 2001 호남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2009년 고창 도산리 고인돌군 문화재 발굴(시굴)조사 약보고서 2010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사적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高敞 竹林里 支石墓群) 🔗
세계유산 UNESCO 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국립박물관. (1967). 상갑리 유적.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92). 고창 죽림리일대지석묘군 지표조사보고서. https://www.riss.kr/link?id=M8221460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93). 고창 죽림리지석묘군 발굴조사보고서.
  • 원광대학교 박물관. (2009). 고창 죽림리 재해고인돌 발굴조사보고서. https://www.riss.kr/link?id=M12525705
  • 전주대박물관·역사문화연구소. (1999). 고창 지석묘군 상석채굴지 지표조사 보고서.
  • 전주문화유산연구원. (2010). 고창 도산리 고인돌군 문화재 발굴(시굴)조사 약보고서.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1). 고창 고인돌 유적 지표조사보고. https://www.riss.kr/link?id=M8245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