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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舊石器時代)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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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돌을 깨뜨려서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난 330만 년 전부터, 갱신세가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 1만 2천 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로 진화하여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 나가다가 다시 현생 인류로 진화하였고, 후기 갱신세에는 중근동에서 시작하여 지구상의 모든 대륙으로 확산하였다.

최초로 도구를 만든 고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석기 출현 이후에 인류의 진화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250만 년 전 무렵에는 호모 하빌리스가, 2백만 년 전 무렵에는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출현한다. 이때부터 인류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호모 에렉투스는 대체로 150만 년 전 무렵에 아시아 지역에 나타난다. 그 후 여러 갈래의 호모들이 지역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지역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나타난다. 후기 갱신세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들이 출현하는데 러시아 알타이(Altai) 지역에서까지 화석이 확인된다.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 인류는 중근동 지방을 거쳐서 전 지구상으로 흩어지는데, 기존의 고인류들과 유전적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현대인에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6만 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들어갔고, 1만 8천 년 전 무렵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시대에는 기후가 크게 변화하였다. 선신세에서 250만 년 전의 갱신세로 들어오면서 기후는 서늘해졌다. 그동안 지구상의 대륙들은 계속해서 이동하였는데 현재 대륙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면 그 거리는 200km가 넘는다. 이러한 대륙의 이동은 해류의 변화를 가져와서 3백만 년 전에는 남극 대륙에 빙하가 형성되었고 북반구에도 빙하가 나타나 서늘한 기후가 되었다. 그래서 지구상의 삼림이 줄어들고 초원과 사바나 환경이 확대된 것이다. 갱신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추운 기후와 따뜻한 기후가 반복되었는데, 이를 각각 빙하기간빙기라고 한다. 이러한 기후 변동은 거의 10만 년, 4만 년, 2만 년 주기로 일어났다. 갱신세는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되는데, 중기 갱신세는 70만 년 전부터 12만 5천 년 전까지, 후기 갱신세는 12만 5천 년부터 1만 2천 년 전까지다. 70만 년 전 이후의 시기에는 10만 년 주기의 기후 변화가 두드러진다. 빙하기라 하더라도 늘 추웠던 것은 아니고 짧은 주기의 추위와 따뜻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빙하기에는 지구상의 수분이 극지방에 얼음으로 쌓이고 심지어는 3000m 두께의 얼음이 되어 해수면이 크게 하강한다. 2만 년 전 전후의 최후 빙하 극성기에는 지역에 따라 해수면이 120m 이상 낮아졌고 대륙붕 대부분이 드러나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해륙 분포가 바뀜에 따라 풍향이 달라지고 강우 유형도 바뀌어 인간의 거주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갱신세에 일어난 기후 변동은 각 지역의 자연환경을 크게 변화시켰고 옛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구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석기 제작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기·중기·후기 구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 이후에 중석기 시대나 최말기 구석기 시대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기들은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완전한 정착 생활이 이뤄지는 신석기 시대의 이전 단계이다.

전기 구석기 시대는 가장 원시적인 석기가 출현하는 단계부터 주먹 도끼가 출현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다. 그 시기가 거의 300만 년을 넘어서 인류의 문화사에서 가장 긴 시대다. 현생 인류로의 진화도 이때 일어났다. 초기의 석기는 몸돌에서 격지를 떼어 내서 만들었다. 이는 덩어리 돌에 날을 세워 찍개류의 석기를 만드는 단계이며, 이러한 석기 문화를 올도완 석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슐리안 석기 문화는 18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등장하는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중기 갱신세 끝 무렵까지 계속된다. 아슐리안 석기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대단히 정교한 모양으로 발달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많이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외형을 지닌다. 이러한 주먹 도끼 문화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나타나는 시기도 각기 다르다. 동유럽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전기 구석기 시대에 주먹 도끼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기후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거나 대체 가능한 도구들로 필요한 기능을 충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도구 제작의 계획성과 복합적 생산 전략을 필요로 하는 주먹 도끼의 출현은 인류의 인지 진화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는 사전 조정 박리 작업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격지 제작 방식이 훨씬 정교해졌다. 이렇게 생산된 격지로 효율적이고 분화된 기능을 가진 석기를 만들었다. 사전 박리 조정 기법은 흔히 르발루아 기법을 말한다. 이는 몸돌을 미리 다듬고 타격할 지점을 잘 정리한 다음 적절한 각도로 격지를 떼어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정교한 작업을 위해서 뿔이나 나무로 만든 망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기술로 긴 격지를 떼어 내 석기를 얇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나 중근동에서는 25만 년 전 무렵에 르발루아 기법이 나타나 아슐리안 석기를 훨씬 정밀하게 만들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전기 구석기에 이어지는 중기 구석기 무스테리안 시기의 석기 제작 과정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제작 기술은 내몽골에서는 보이지만, 한반도와 중국의 중남부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무스테리안 문화는 대체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데,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꽤 높은 수준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인류 진화와 문화 진화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다.

한편 가장 오래된 돌날 석기 기법은 이스라엘의 야브루디안(Yabrudian) 문화에서 보이는데, 그 시기는 거의 3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그렇지만 돌날 기법은 전 세계적으로 5만 년 전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전 조정 작업을 거쳐 제작된 돌날은 얇고 길며 측면이 나란한데, 날이 날카롭고 얇은 몸체를 다듬어서 고른 날을 만들 수가 있어서 이전의 도구들보다도 훨씬 효율적이다. 그래서 기술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돌날 기법이 이전의 도구 제작 기술을 대체하게 된다. 돌날로 만든 다양하고도 예리한 도구들이 등장하고, 각 문화에 따라 다른 형식의 석기들이 석기 공작을 구성하면서 지역별로 다양한 이름의 문화가 나타났다. 유럽과 중근동 지역에서는 초기 후기 구석기 문화를 오리냐시안(Aurignacian) 문화로 부르고 있다. 최후 빙하 극성기가 되면 많은 지역의 돌날 석기 문화가 훨씬 더 정교한 좀돌날 문화로 변화하게 된다. 좀돌날 석기의 출현은 두 가지 기술적인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는 세밀하고 연속적인 소재 제작을 위한 장치 또는 보조적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뼈나 나무에 석기를 끼워 넣어서 효율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장착 기술이다. 장착형 도구는 후기 아슐리안 석기 공작에서 이미 나타났다. 아슐리안 주먹 도끼의 손잡이 부분을 가공하여 끼울 수 있게 한 것이 장착용 도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새기거나 그리는 등의 예술 행위가 나타난다. 타조알이나 뼈, 뿔 등으로 만든 장신구의 출현, 유적에 사용된 염료 등은 예술의 시작을 보여 준다. 예술 활동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시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보다는 현생 인류와 더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이 시기의 유적에서는 상아, 뼈, 뿔 등으로 만든 인물상이나 작은 동물 조각상들이 발견된다. 또한, 4만 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동굴 벽화들이 출현한다. 과거에는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에서 벽화가 시작되었다고 보았으나, 최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섬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는 유럽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현생 인류 단계에서 인간성의 표현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