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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리 고인돌[高敞 新月里支石墓]

한국고고학사전
(고창신월리고인돌에서 넘어옴)


신월리 고인돌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신월리 고인돌, 고창 신월리 지석묘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 263-1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슴베 간 돌살촉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신월리 263-18 일원에 위치한다. 서해안 고속 도로(군산-고창 간) 건설 공사에 앞서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1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화시봉(해발 403m)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높게 솟아오른 해발 80m 정도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조사 당시 이 고인돌이 위치한 서사면 골짜기 일원으로도 수기의 고인돌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놓여 있어 주변을 조사하였으나 개간 과정에서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형식은 기둥 모양(柱形)과 괴석형의 받침돌(支石)덮개돌(上石)을 고인 바둑판식(碁盤式)이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단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윗면은 편평하나 일부 깨어져 있었으며 밑면은 약간 각이 졌다. 장축 방향은 동서 방향이며 길이 2.52m, 너비 1.39m, 두께 1.4m이고 무게는 24톤 정도이다.

받침돌은 5개가 덮개돌을 받치고 있었다. 받침돌은 서쪽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본래는 있었을 것이나 후대에 유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받침돌은 길이 0.8m, 너비 0.49m, 두께 0.4m, 길이 1.1m, 너비 0.7m, 두께 0.54m 정도이고, 받침돌 사이의 너비는 0.8m 정도이다. 받침돌은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2개씩이 지상에 노출된 반면에 동쪽의 1개는 지하에 약간 묻혀 있어 받침돌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동쪽의 덮개돌과 닿는 부분이 다른 면에 비해 약간 돌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쪽의 받침돌 2개는 기둥 모양과 괴석형이다. 남쪽의 받침돌 중 서편의 것은 괴석 위에 작은 깬돌(割石)을 받쳐 놓았으며, 남쪽과 북쪽 받침돌은 생토면에 그대로 놓여 있지만, 동쪽 받침돌은 하부에 작은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그 위에 받침돌을 놓아 적심석(積心石)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부 구조는 심하게 교란되었으나 깬돌로 2~3단 정도 쌓은 돌덧널형(石槨形)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장축은 동서 방향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너비 0.36~0.57m, 높이 0.48~0.7m 정도로, 바닥 면은 6매의 판돌형의 깬돌을 3부분으로 나누어 깔았다. 무덤방은 짧은 벽인 동벽석은 1매의 판돌형 석재로 세웠으나, 서벽과 양쪽 긴 벽은 깬돌을 이용하여 눕혀 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그리고 무덤 구덩이(墓壙)와 벽 사이는 괴석으로 채웠다. 무덤방은 심하게 교란된 상태였는데, 특히 서벽 쪽은 받침돌과 벽석이 유실되어 덮개돌과 무덤방의 바닥면 사이로 사람이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노출되었다.

출토 유물은 무덤방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는데, 동벽 뒷채움 돌 사이에서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신월리 고인돌은 다양한 형태의 받침돌로 덮개돌을 고인 바둑판식이면서 돌덧널형의 무덤방과 돌살촉이 출토된 귀중한 자료로, 발굴 조사 후 서해안 고속 도로 고창휴게소(상행)에 이전·복원하였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서해안고속도로(군산-고창간)건설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고창의 주거지Ⅰ-신덕리Ⅰ·Ⅱ·Ⅲ-B, 신송리, 죽림리 지석묘, 죽림리, 산정리 유적- 2006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참고문헌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6). 서해안 고속 도로(군산-고창간)건설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고창의 주거지Ⅰ-신덕리Ⅰ·Ⅱ·Ⅲ-B, 신송리, 죽림리 지석묘, 죽림리, 산정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869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