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암치리 고인돌군[高敞 岩峙里支石墓群]

한국고고학사전


암치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고창 암치리 고인돌군, 고창 암치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산 83-1 암치 마을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껴묻거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돌도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산 83-1 암치 마을 일원에 위치한다. 1983년 전북대학교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30여 기의 고인돌이 보고되었으나 대부분 훼손되었고, 고창 성송 지구 농촌 용수 개발 지역 내 암치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1999~2000년(원광대학교박물관)과 2001년(전북대학교박물관)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의 축조 입지는 고창군 성송면에서 장성군 삼계면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남쪽 산사면 북단부에 밭이나 논으로 개간된 구릉이다. 이 일대에서는 4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경지 정리와 개답 공사, 도로의 확·포장 등으로 인해 본래 위치에서 옮겨져 한 곳에 모아진 양상이다.

원광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로, 덮개돌은 평면 형태가 부정형(不定形)이며 길이 7.68m, 너비 5.04m, 두께 0.9~1.8m, 무게는 85톤에 달하는 대형이다. 조사 결과, 구 지표면은 동쪽보다 서쪽이 약 0.6m 높았는데, 덮개돌도 지형에 따라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태를 보였다. 받침돌(支石)은 덮개돌 아래에서 남쪽 3매와 북쪽 3매, 그리고 중앙 1매를 포함하여 총 7매가 확인되었다. 받침돌의 높이는 0.3~0.7m 정도로 일정하지 않고 북서쪽과 남서쪽의 받침돌은 배 모양(舟形)이나 나머지는 괴석형(塊石形)이다. 받침돌의 단면을 조사한 결과, 받침돌 하부는 적심(積心)을 설치하거나 잔자갈을 깔았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역 시설(墓域施設)은 덮개돌 아랫부분을 따라 안쪽으로 길이 0.4~1m 내외의 얇고 평편한 판돌(板石)과 잡석을 깔았다. 묘역 시설 내에는 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가 설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고인돌은 제단(祭壇) 고인돌로 추정된다. 유물은 묘역 시설 내에서 민무늬 토기붉은 간 토기 편을 비롯하여 조잡하게 가공한 돌도끼(石斧) 1점이 출토되었다.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지역은 산 구릉의 골짜기에서 평지인 농지로 이어지는 구릉에 해당한다.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30여 기의 대형 석재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 중 발굴 조사된 고인돌은 7기로, 농지 정리에 의해 이동되어 고인돌의 구조나 형식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기도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부정형, 장방형, 방형 등으로 구분되며 이 중 4기는 장방형이다. 덮개돌은 길이 1.5~3.4m, 너비 0.8~2m, 두께 0.36~1.22m 정도로 일정하지 않으며 그 차이가 큰 편이다. 특히 덮개돌의 무게는 1.7~12.8톤 정도로, 5톤 이하가 4기, 5~10톤 이하가 1기, 10톤 이상이 2기이다. 유물은 고인돌 덮개돌이 한 곳으로 모아져 있었던 곳에서 민무늬 토기 바닥 편 1점이 수습되었다.

암치리 고인돌은 대부분 후대 이동 및 훼손 등으로 고인돌의 구조나 형식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으며 원광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고인돌은 묘역 시설을 갖춘 바둑판식 고인돌로, 제단 고인돌로 추정될 뿐이다. 하지만 껴묻거리(副葬品)의 성격을 가진 토기들과 석기가 출토되었고 묘역 시설 일부분에서 주검 받침(屍床)이나 널받침(棺臺)과 같은 성격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제단 고인돌보다는 고분적 성격의 고인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9년~2000년 고창 암치리 유적 2001 원광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2001년 고창 암치리 유적 2002 전북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