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녹동리 유적(慶州 鹿洞里遺蹟)

한국고고학사전
(경주 녹동리 유적에서 넘어옴)


녹동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경주 녹동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161-4, 19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화덕 자리,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그물추, 반달 돌칼, 돌살촉, 돌도끼, 가락바퀴, 검단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신영애, 김재윤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161-4, 191-1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포항 간 고속 국도 건설에 앞서 2010~2011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 18기 및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유구를 다수 확인하였다(녹동리 191-1), 이후 주택 단지 신축으로 2016년 서라벌문화재연구원이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녹동리 161-4). 유적은 남쪽으로 뻗은 능선과 중앙의 독립 구릉, 서쪽으로 뻗은 능선 사이에 입지하며, 두 유적은 서로 인접하여 위치한다.

집자리는 각 구릉 정상부와 남쪽 비탈면, 동쪽 비탈면에 5~7기씩 분포하며, 등고선 방향을 따라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길이 3.6~7.3m, 면적 13.4~22.8㎡로 중소형이다. 3호는 길이 7.36m, 너비 4.28m, 깊이 0.46m로 가장 크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며, 13호만 2개가 설치되었다. 바닥면을 그대로 사용한 평지식과 굴착한 구덩식(竪穴式)으로 나뉜다. 크기는 지름 0.56m, 구덩식은 깊이 0.08m이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배치상태가 불규칙하며, 일부는 4주식(柱式)과 6주식이 확인된 예도 있다. 벽 도랑은 ‘ㄱ’, ‘ㄷ’, ‘ㅁ’, ‘ㅡ’자 모양이 확인되었다. 일부는 벽 도랑 안에서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데 벽 도랑을 따라서 일정하게 배치되었다. 3호는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이 다른 집자리의 기둥 구멍보다 크고 깊다. 4호도 기둥 구멍이 크고 깊으며, 목재를 이용해서 벽체를 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6호는 폐기 시점까지 벽 도랑이 노출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수로의 기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3호에서 잔존 길이 2m 정도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그물추, 반달 돌칼, 돌살촉, 돌도끼, 가락바퀴,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바리 토기에는 구멍무늬(孔列文)가로줄무늬(橫線文)의 문양이 나타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집자리 3호 265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20년), 9호 28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 12호 27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0년), 16호 26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30년), 17호 27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10년)로 측정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된 토기를 통해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