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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동 유적(慶山 中山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 넘어옴)


중산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경산 중산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경산시 중산동 64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널무덤, 구덩이, 화덕 자리, 벽 도랑, 외부 돌출구, 바리 토기, 간 돌검, 동천동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광명



설명

경상북도 경산시 중산동 643 일원에 위치한다.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08~2010년 조사하여, 집자리 44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 1기, 화덕 자리 1기 및 초기 철기 시대 토기 매납 유구 1기, 구덩이 18기, 움무덤(土壙墓) 1기, 도랑(溝) 1기, 삼국~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성암산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입지하며, 전체적인 지형은 남동쪽이 낮고 북서쪽이 높은 완만한 구릉이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분된다. 세장방형은 5기가 조사되었으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다. 규모는 길이 8.34~13.08m, 너비 1.75~3.9m, 깊이 0.17~0.47m, 평균 면적 41㎡로 대형이다. 내부 시설에는 화덕,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은 대부분 무시설식의 구덩식으로, 33·40호는 2개, 3·11·25호는 3개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집자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네 벽면에 모두 설치되었으며, 벽 도랑 내에서 기둥 구멍도 일부 확인되었다. 유물은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간 돌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등이 출토되었으며, 33호에서는 간 돌검, 간 돌살촉, 조갯날 돌도끼(合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 돌칼, 갈판(碾石) 등 다량의 석기 유물이 출토된 점이 특징이다.

장방형 집자리는 30기로, 유적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규모는 길이 4.09~7.92m, 너비 1.68~4.02m, 평균 면적 21.7㎡로 세장방형 집자리에 비해 규모가 작은 중형 집자리이다. 내부에 설치된 화덕은 무시설의 구덩식이 대부분인데, 1개가 설치된 경우는 11기, 2개가 설치된 경우는 9기이다. 화덕 2개가 설치된 집자리는 유적의 동쪽과 서쪽 부분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고, 1개가 설치된 집자리는 골고루 분포한다. 벽 도랑은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확인되며, 형태는 ‘ㅁ’, ‘ㄷ’, ‘ㄱ’, ‘一’자 모양 등 다양하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집자리의 바닥보다 낮은 쪽으로 향해 있어 배수(排水)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벽 도랑의 형태와 외부 돌출구는 인접한 유적인 경산 옥곡동 취락 유적의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적인 형태이다. 출입구 시설로 판단되는 시설은 16·37호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38호 집자리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골아가리(口脣刻目文)바리 토기(鉢形土器)가 출토되었고, 석기류는 1호에서 피 홈(血溝)이 있는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이밖에 달도끼와 구멍2개가 뚫린 반달 돌칼이 출토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7기가 조사되었으며, 길이 2.46~4.2m, 너비 1.47~3.64m, 평균 면적 9.86㎡이다. 집자리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외부 돌출구,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어, 좁은 면적에 주거용으로는 부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가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석기류는 간 돌검, 돌창(石槍), 조갯날 돌도끼,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원형 집자리는 유적의 동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길이 3.65~4.22m, 너비 3~4.03m, 면적 11~17㎡로 방형 집자리보다는 큰 편이다. 20호는 내부에 기둥 구멍 2개가 0.6m 간격으로 배치되어 동천동식 집자리로 판단된다.

돌널무덤은 22호 집자리와 인접하여 위치한다. 무덤 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1.63m, 너비 0.6m, 깊이 0.35m이며, 돌널은 길이 1.05m, 너비 0.28m이다. 무덤의 축조 방법은 무덤 구덩이를 파고 길이 1.44m, 너비 0.4m의 판돌(板石) 1매를 주검 받침돌(屍床石)으로 설치하고, 판돌을 세워 ‘ㅍ’자 구조로 조성하였다. 출토 유물은 돌검 1점, 돌살촉 1점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2호 27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50년), 27호 25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600년), 33호 25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5년)로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집자리 보다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와 돌널무덤의 조성 시기가 다른 것은 금호강 유역권의 청동기 시대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8년 10월 27일~2010년 01월 08일 경산 옥산동 300번지유적 2011 영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

  • 안재호. (2006). 청동기시대 취락연구.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1). 경산 옥산동 300번지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731628
  • 하진호. (2008). 대구지역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 (석사 학위 논문). 경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