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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동 고인돌군[麗水 禾長洞支石墓群]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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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화장동 고인돌군, 여수 화장동 지석묘군, 여수 화장동 유적, 여수 화장동 약물고개 고인돌군, 여수 화장동 약물고개 지석묘군, 여수 화장동 화산 고인돌군, 여수 화장동 화산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945-1(화장동 유적)·894-149(화산 고인돌군)·888-1(약물고개 고인돌군)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무덤방, 덮개돌, 바둑판식 고인돌, 돌덧널무덤, 덮개식 고인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승근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945-1(화장동 유적)·894-149(화산 고인돌군)·888-1(약물고개 고인돌군)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화장동 유적, 약물고개 고인돌군, 화산 고인돌군으로 구분되며 모두 1㎞ 범위 내에 분포한다. 여수시에서 시행한 택지개발지구 건설에 따라 화장동 유적과 약물고개 고인돌군의 조사(1996)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국립목포대학교박물관·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화산 고인돌군의 조사(1998년)는 국립순천대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화장동 유적에 대한 조사(2000년)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화장동 유적은 해발 200~300m의 산지에 둘러싸여 조그마한 분지성 평지에 해당한다. 고인돌은 모두 27기로서 대개 등고선 방향과 동일한 동북-서남의 2열이다. 덮개돌(上石)의 장축 방향은 27호 같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고인돌 열(列)과 동일한 방향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타원형, 부정형 등이다. 덮개돌이 존재하는 27기의 고인돌에서 매장 주체부가 확인된 것은 13기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하부 구조로서 즙석(葺石) 되었지만 돌덧널(石槨)이 없는 것이거나, 덮개돌이 이동된 경우이다.

하부 유구가 노출된 고인돌은 고인돌 군집에서 양측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동북쪽(3·4호)과 서남쪽(23~27호)에 위치한다. 3호 고인돌의 경우는 하나의 덮개돌 아래에 구획석과 돌무지(積石)에 의해 구분되어지는 4기의 무덤방(석곽)이 조사되어 특이한 경우이다. 하부 유구(下部遺構)가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만, 유물이 풍부한 고인돌의 덮개돌은 전체 고인돌군에서 가장 소형에 속하며 24호와 26호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24호와 26호에서는 뚜껑돌이 확인되지 않았다. 무덤방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양상이 보인다. 즉 11기의 무덤방 가운데 8기의 무덤방 장축이 등고선과 일치하는 방향이고, 23·26·27호는 특이하게 등고선과 직교하는 방향에 가깝다. 26호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고 26호를 중심으로 구획석이 존재한다. 바닥 시설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즉 판돌로 깐 경우(3·3-1·23·26·27호)와 잔자갈을 전면에 깐 것(24호), 그리고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맨바닥(3-2·3-3·25호)인 경우가 있다.

출토 유물은 26호에서 비파형동검 편이 1점 출토되었다. 공반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에 한한다. 소옥(小玉)은 3-3호 석곽 바닥에서 1점, 대롱옥은 벽옥제로 24호 무덤방에서만 15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 편과 붉은 간 토기 편이 출토되었는데, 붉은 간 토기 편은 드물고 민무늬 토기 편이 대부분이다. 24·26·27호 무덤방의 주변에서 토제 그물추3점이 출토되었다.

목포대박물관에서 조사한 화장동 약물고개 고인돌군은 화장동 765-11 일원에 위치한다. 고인돌 조사에서 덮개돌을 갖춘 무덤방 7기와 덮개돌을 갖추지 않은 무덤방 12기가 조사되어 총 19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고인돌군은 해발 고도 41m 정도의 구릉에 입지하고 있는데 지형상의 분포에 따라 크게 구릉 능선부와 사면부로 나누어진다. 사면부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4호에서 7호가 해당되며, 나머지는 능선부에 속한다.

덮개돌은 7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 삼각형, 장방형, 제형으로 나누어지고, 단면 형태는 장방형, 타원형, 제형, 부정형 등으로 나누어진다. 덮개돌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2열을 형성하면서 배치되어 있다. 1호 덮개돌에서 5호 덮개돌이 한 열을 이루고, 6호와 7호 덮개돌이 또 다른 열을 이루고 있다. 무덤방의 배치 형태는 4열을 이루는 구조를 띠고 있는데, 북쪽에 형성된 열부터 보면, 2-2~5-3호, 3-2~5호, 1~6-2호, 6호와 7호가 각각 열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화장동 약물고개 고인돌에서 받침돌을 사용하여 덮개돌을 지탱한 고인돌은 4호와 5호로 약물고개 고인돌 중에서 대형 덮개돌을 갖추고 있다. 4호는 대형 받침돌 1매를 이용하였고, 5호는 모두 4매의 받침돌이 덮개돌과 뚜껑돌을 받치고 있었는데, 암반을 이용해 받침돌로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묘역 시설을 가진 고인돌은 모두 3기(1·2·2-2호)로 하나는 작은 깬돌과 잡석으로 1~2단 정도 쌓은 것(2호)과 판돌을 깔고 그 사이에 작은 깬돌과 잡석을 다져 쌓은 것(1호)이다. 또, 판돌로 무덤방을 두른 것이 있다(2-2호). 덮개돌을 갖추고 있는 무덤방의 형식은 모두 돌덧널형이다. 돌덧널의 경우, 긴 벽은 깬돌을 이용하여 2~3단 정도 쌓아서 축조하였고, 짧은 벽은 대형 깬돌 1매를 이용하거나 여러 매의 깬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은 석기류와 옥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3점, 화살촉 2점, 숫돌 1점(3-3호)이 출토되었고, 옥류는 대롱옥 3점, 토기류는 모두 2점인데, 깊은 바리모양 민무늬 토기 1점과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로 추정되는 몸통 편 1점이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약물고개 고인돌에서는 1호와 4-1호에서 목탄이 수습되어 중심 연대가 1호는 기원전 910년, 4-1호는 기원전 830년(이상 서울대 기초과학교육연구 공동기기원)과 기원전 907년(뉴질랜드 라프터방사성탄소 연구소)으로 제시되었다.

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화장동 유적은 고인돌 1기가 확인되었다. 대통골과 종골 사이를 해발 74.1m의 낮은 야산에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고갯마루로서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자주 통행하던 길목에 1기의 바둑판식 고인돌을 중심으로 5기의 돌덧널무덤이 등고선 방향으로 군집을 형성하여 분포한다.

고인돌은 가장 위쪽에 큼지막한 판돌형 개석을 놓은 바둑판식 구조로서 풍화암반을 0.74~0.88m 깊이로 몇 번의 단이 지게 판 후에 말각 장방형의 장변에 판돌을 가로로 세우고, 바닥을 크고 작은 깬돌로 깔고, 3매의 대형 판돌을 뚜껑돌로 덮어서 지하 무덤칸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2단에 걸쳐 깬돌을 쌓아 돌무지 시설을 만들고, 다시 점토를 단단하게 다져 놓은 후에 대형의 넓적한 판돌을 뚜껑돌로 하여 토광의 대부분을 덮고 그 가장자리의 한쪽 부분은 비교적 큼지막한 판돌으로 끝을 맞추어 쌓았다. 마지막으로 대형 판돌 및 위석 시설에 부분적으로 걸치도록 큼지막한 판돌을 놓거나 작은 깬돌을 쌓아서 뚜껑돌을 보호하거나 덮개돌을 올리기 위한 받침돌을 마련하기 위한 시설을 설치하였다. 무덤의 축조 과정은 크게 3단으로 구덩이를 파고, 내부 매장 시설을 설치하고, 묘역 시설을 조성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지하 매장 주체부를 3단 구덩이에 조성한다. 먼저 북쪽 긴 벽에 북동쪽 모서리에서부터 길이가 각각 0.73m, 0.35m인 판돌 2매를 벽면에 가로로 세우고, 다음으로 남쪽 긴 벽에 역시 남동쪽 모서리에서부터 길이가 각각 0.46m, 0.25m의 판돌을 벽면에 붙여 세웠다. 추가적으로 길이가 0.41m인 상당히 얇은 판돌을 중앙에 작은 판돌과 벽면 사이에 살짝 끼워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바닥을 여러 매의 자연석 및 깬돌을 사용하여 2단에 걸쳐 깔아 벽면에서 판돌을 고정하면서 시상대를 조성하였다. 3개의 잘 다듬어지고 큼지막한 판돌을 동쪽 짧은 벽에서부터 서쪽 짧은 벽 방향으로 나란히 뚜껑돌로 덮었다. 출토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화산 고인돌군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894-195 일원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화산마을 뒤편의 해발 50~60m의 구릉 상에 위치하는데,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등고선 방향인 동서 방향으로 6기가 2열로 배치되어 있다. 택지 조성 공사로 인해 6기의 고인돌의 덮개돌 중에 5기가 이동되었고, 매장 주체부의 일부가 파괴된 상태였으며, 조사 결과 6기의 고인돌 외에 덮개돌이 없는 돌덧널(石槨) 8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받침돌(支石)이 확인되는 바둑판식(碁盤式)과 받침돌이 보이지 않는 덮개식(蓋石式)이 혼재되어 있다. 덮개돌이 없는 돌덧널 8기는 2호와 5호 고인돌 사이에 위치하는데, 동서 11m, 남북 12m의 비교적 좁은 공간에 등고선 방향인 동서 장축을 이루고 있다. 서로 인접하여 구획석(區劃石)을 가지는 3기, 생토층을 깊이 굴착하여 벽석을 3~4단 쌓고 판돌형(板石形) 뚜껑을 겹으로(二重蓋石)놓은 것 2기, 구지표면을 간단히 정지한 후 깬돌(割石)을 1~2단 쌓고 작은 깬돌로 바닥돌을 깐 것 2기, 인접하여 같은 장축 방향을 가지며 비교적 작은 깬돌로 벽석을 1~2단 돌린 것 3기 등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지상에 작은 깬돌을 돌린 돌 두름형(圍石形)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덧널형이다. 무덤방의 크기로 보면, 펴묻기(伸展葬)가 많으나, 굽혀묻기(屈身葬)나 두벌 묻기(二次葬)라고 볼 만한 소형도 있다. 특히 돌덧널무덤 4호, 5호 무덤방은 각각 길이 0.8m, 너비 0.4m, 길이 0.7m, 너비 0.34m로 작은 편인데, 다른 무덤방과 비교해 볼 때 피장자가 어린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간 돌검 1점, 간 돌살촉 6점, 홈자귀(有溝石斧) 편 1점, 숫돌(砥石) 1점,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등이다. 간 돌살촉은 3호 고인돌에서 2점이 출토된 것을 제외하고는 각 무덤방에서 1점씩 출토되었다. 민무늬 토기 편 가운데에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이 있다. 유물은 대부분 무덤방 내에서 출토되었으나, 돌덧널무덤 8호 무덤방에서 출토된 간 돌살촉은 벽석 아래에서 확인되며, 2호 고인돌의 홈자귀와 숫돌은 묘역(墓域)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조사 후, 고인돌은 여수 선사 유적 공원(화장동 945-1)으로 이전·복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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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