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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리 창촌 유적(光陽 旨元里蒼村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지원리창촌유적에서 넘어옴)


지원리 창촌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양 지원리 창촌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지원리 1438-1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집자리, 구덩이, 무시설식 화덕자리, 구멍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짧은 빗금무늬 토기, 숫돌, 외반 구연 토기, 돌도끼, 가지무늬 토기,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지원리 1438-14 일원에 위치한다. 진주-광양 복선화 제6공구 노반 건설 공사에 앞서 2010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수어 저수지 동쪽 1㎞에 위치하는데, 동쪽의 산지에서 뻗어 내린 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유적 서쪽으로는 수어천이 흐른다.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구덩이, 도랑, 고인돌을 비롯하여 심국 시대 집자리, 구덩이, 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서로 다른 입지 양상을 보인다. 고인돌은 구릉 상부의 해발 38.5~40m에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집자리와 구덩이는 서로 중복되어 구릉 하단부의 해발 31~35.5m에 분포한다. 집자리는 3기로 모두 사면 하단부가 유실되어 정확한 규모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보아 장방형 또는 말각 방형으로 내부에 무시설식 화덕자리(無施設式爐址)가 1기씩 갖추어져 있고, 2호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다. 집자리 내부에서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를 비롯하여 민무늬 토기 편,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편,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2호 집자리에서는 외반 구연 토기(外反口緣土器)도 출토되었다. 집자리 구조와 출토 유물은 순천 복성리 유적또는 순천 선평리 강청 유적과 비교되는데, 1호는 기원전 13~10세기, 2호는 이보다 늦을 가능성이 있다.

구덩이는 6기 확인되었다. 모두 집자리 인근에서 확인되고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등 다양하다.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구멍무늬 토기 편,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 2기는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분포하고, 덮개돌(上石)은 확인되지 않았다. 1호는 돌널형(石棺形)으로 판돌 수 매를 세워 만들었고, 2호는 돌덧널형(石槨形)으로 깬돌(割石) 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2기 모두 여러 매의 판돌형 깬돌을 이용하여 덮었다. 뚜껑돌(蓋石) 주변과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가 출토되었다. 가지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로, 고인돌의 축조 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과 더불어 기원전 12세기로 판단된다.

지원리 유적은 생활 유구와 무덤 유구가 함께 확인된 유적이다. 각 유구의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문화 단계까지로, 특정 시점에는 일정 공간 안에서 생활 공간과 무덤 공간이 분리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