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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동 상연암 유적(蔚山 蓮岩洞上蓮岩遺蹟)

한국고고학사전
(연암동 산성 유적에서 넘어옴)


연암동 상연암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연암동 상연암 유적, 울산 상연암 유적, 울산 연암동 유적, 울산 연암동 산성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1360, 1365, 1391, 118-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함정, 둘레 도랑, 연암동식 집자리, 깊은 바리 토기, 그물추, 조갯날 돌도끼, 홈자귀, 간 돌살촉, 간 돌검, 반달 돌칼, 돌무지움무덤, 삼각 오목 돌살촉, 슴베 간 돌검, 탄화미, 민무늬 토기, 송국리 단계, 검단리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1360, 1365, 1391, 118-1 일원에 위치한다. 산업 단지와 진입로, 산업로 조성으로 2002·2007~2008·2009년 조사하였다. 연암동 산성 유적(연암동 118-1)에서는 집자리 9기, 구덩이 1기, 도랑(溝) 2기가 확인되었다. 전체 산업 단지 중 A지구(상연암 유적)는 울산문화재연구원 조사 구역에 해당하며, B-1·2지구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연암동 유적)에서 조사하였다. 산업 단지 중 B-3~6지구와 C지구는 대동문화재연구원(울산 효문동 산68-1 유적)에서 조사하였다. A지구는 Ⅰ~Ⅴ지구와 진입로부지로 구분하였다. Ⅰ지구에서는 집자리 3기, Ⅱ지구에서 집자리 1기, 구덩이 15기, 함정(陷穽) 18기, Ⅲ지구에서 집자리 1기, 무덤 1기, Ⅳ지구에서 집자리 18기, 둘레 도랑(周溝) 1기, 구덩이 4기, 함정 1기, Ⅴ지구에서 집자리 7기, 둘레 도랑 1기, 도랑 1기, 진입로 부지에서 집자리 2기, 구덩이 7기, 기둥 건물터 1기가 조사되었다. 그 외에 통일 신라~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조사되었다. B-1·2지구(울산 연암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15기, 둘레 도랑 4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무룡산의 남서쪽 지봉인 매봉재(해발 334m)에서 서쪽의 동천으로 이어지는 구릉부에 각각 위치한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대부분 등고선에 평행하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설치되었고 구릉 아래쪽 모서리에는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굴착한 구덩식과 편평한 바닥을 바로 이용한 평지식으로 나누어진다. 벽을 따라 설치된 벽 도랑은 전체 집자리 중 약 절반 정도에 설치되었다. 배수구는 집자리의 아래쪽이 유실된 사례가 많아 전체 집자리에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벽 도랑이 설치된 집자리에는 배수구가 모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은 대부분 4주식(柱式) 또는 6주식이다. Ⅴ지구 6호는 집자리 외곽으로 도랑이 설치된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B-2지구 9·11호는 집자리 외곽에 둘레 도랑을 돌린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B-2지구 7·13호는 내부에 돌무지(積石)를 쌓은 집자리이다. 산업로 1호는 집자리 외곽으로 타원형의 도랑이 설치된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집자리 내부에서 손잡이 달린 깊은 바리 토기(把手附深鉢形土器), 혹무늬(孔列文)낟알무늬 등이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등의 토기류와 그물추 등의 토제품,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홈자귀(有溝石斧), 간 돌살촉, 간 돌검, 반달 돌칼 등의 석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보고된 A지구 돌무지움무덤(土壙積石墓)은 내부에 돌이 쌓여 있지만 벽석이 확인되지 않았다. 규모는 길이 3.4m, 너비 2.8m, 깊이 0.8m이다. 바닥에 잔자갈을 깔고 그 위에 주검 받침돌(屍床石)을 놓았다. 출토 유물은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1점,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어 초기 철기 시대의 유구일 가능성이 높다.

함정은 Ⅱ지구에서 18기, Ⅳ지구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Ⅱ지구에서 조사된 함정은 매봉재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이 남쪽과 서쪽 방향으로 6개의 작은 구릉으로 갈라지는 소위 ‘목’에 해당되는 부분에 2열로 설치되었다. 2열의 함정 열이 ‘W’자 모양으로 1열과 2열이 어긋나게 배치되었다. 형태는 타원형이며 단면 형태는 바닥의 너비가 좁은 ‘Y’자 모양 , 바닥의 너비가 넓은 ‘Y’, ‘V’자 모양으로 나누어진다. 규모는 길이 1.8~3.7m, 너비 1.0~2.5m, 깊이 0.5~1.9m이다. 바닥에 나무창(木槍)이 없는 무시설식이 대부분이다. 토층 아래쪽에서 회색의 유기물 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나뭇가지 등의 각종 유기물로 상부가 은폐되었음을 알 수 있다.

B지구에서 확인된 둘레 도랑 4기는 연암동식 집자리의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과 같은 형태인데 내부에서 집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도랑무덤(周溝墓)이라는 견해가 있다.

구덩이 중 일부는 저장용으로 추정된다. Ⅳ지구 3·4호 구덩이에서는 내부에서 재가 확인되어 분석한 결과, 벼 탄화 과실, 팥 탄화 종자, 피류 탄화 종자, 기장 탄화 종자가 검출되었다. 구덩이 내부에 불을 맞은 흔적이 없고, 검출된 탄화미는 겉겨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가공이 이루어지고 탄화된 이후 구덩이로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로 구간 계곡부에서 확인된 도랑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안에서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배치와 형태, 출토 유물을 통해 송국리·검단리 단계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Ⅱ-1호 집자리 275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36~834년), Ⅳ-17호 집자리 275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899~811년), Ⅳ-1호 함정 242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545~407년)로 확인되었다. 또, B-2지구 5호가 28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 B-2지구 7호가 25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600년), B-2지구 10호가 30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00년), B-2지구 13호가 26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03년)로 확인되었다. 이를 참고하면 B-2지구 10호는 송국리·검단리 단계보다는 이른 시기에 해당될 수도 있다. 집자리에서 수습한 불탄 목재의 수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상수리나무류로 확인되었다. 일부 집자리에서는 볏과, 대나무과가 출토되었는데 건축재로 사용했을 경우 집자리의 기둥과 지붕 구조의 재료로, 연료재로 사용했을 경우 착화재 등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Ⅳ지구 2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토기의 아가리 내외면에 광택이 있는 흑색 물질이 얇게 도포되어 적외분광 분석을 실시한 결과 아스팔트에 가까운 성분을 확인하였다. 이외에 현미경으로 아스팔트를 관찰한 결과 아가리 내외면에 균일한 두께로 부착된 것을 확인하여, 흑색 물질을 발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조몬 시대의 뼈뿔연장과 돌창에서 접착제로 아스팔트를 이용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최초로 확인되었으며, 토기의 방수적 기능을 강화하거나 의장적·장례적 기능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로구간 3·8호 집자리에서 확인된 불탄 목재의 분석 결과 3호에서는 건축재로 추정되는 졸참나무와 굴피나무가 확인되었고, 8호에서는 연료재나 건축재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수리나무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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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2년 3월 4일~2002년 6월 14일 울산 연암동 산성 유적 2004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7년 9월 10일~2008년 11월 7일 울산 상연암 유적 2010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9년 2월 13일~2009년 3월 23일 울산 상연암 유적 2010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8년~2009년 울산 연암동 유적 201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