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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량동 유적(麗水 積良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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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량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적량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 144-2(상적 고인돌Ⅰ), 127(상적 고인돌Ⅱ), 392(상적 고인돌Ⅲ), 499·517(상적 고인돌Ⅳ)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집자리, 돌검, 돌살촉, 돌도끼, 돌끌,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그물추, 구멍무늬 토기, 비파형동검, 자루 간 돌검, 홈자귀, 가락바퀴, 숫돌, 대롱옥, 껴묻거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 144-2(상적 고인돌Ⅰ), 127(상적 고인돌Ⅱ), 392(상적 고인돌Ⅲ), 499·517(상적 고인돌Ⅳ) 일원에 위치한다. 상적 고인돌Ⅲ은 호남 정유공장 확장 공사 부지에 포함되어 1989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상적 고인돌Ⅰ·Ⅱ·Ⅳ는 여수 GS칼텍스 공장 증설 부지에 포함되어 2007~2010년 동북아지석묘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영취산(해발 510m)에서 광양만 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 사이에는 협소하나마 곡간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적량동 고인돌군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린 세장한 구릉성 산지 사이에 형성된 길이 1.5㎞, 너비 0.5㎞의 곡간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적 고인돌Ⅰ·Ⅱ는 곡간지의 동쪽 산기슭에, 상적 고인돌Ⅲ은 곡간지의 중앙에, 상적 고인돌Ⅳ는 서쪽 산기슭에 있었다. 따라서 상적 고인돌 4개 군은 동서 700m, 남북 250m의 범위에 분포한다.

상적 고인돌Ⅰ은 영취산에서 흘러내린 낮은 구릉에 자리한다. 해발 75~80m 정도로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곳에서 8기의 고인돌 이 확인되었다. 덮개돌(上石) 은 이미 대부분 이동되었다. 4호와 8호 고인돌만 이동되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하부 시설과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타원형, 부정형이며, 무게는 0.5~18톤이다.

상적 고인돌Ⅱ는 해발 61~64m 정도에 위치한다. 고인돌 11기와 덮개돌이 없이 확인된 돌널(石槨·石棺) 4기, 집자리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 11기 가운데 하부 시설이 확인된 것은 9기이고, 2기는 덮개돌만 남아 있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방형, 부정형 등으로 다양하며, 무게는 1.2~5.5톤이다. 받침돌(支石) 은 1·9·10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된다. 묘역 시설 은 5기에서 확인되는데,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타원형, 원형으로 다양하다. 뚜껑돌(蓋石)은 2·11호 고인돌에서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 으로 깬돌을 세우거나 쌓아 축조하였다. 바닥은 대부분 전면에 잔자갈을 깔았지만 6호 고인돌은 작은 자연석을 세 부분에 띄엄띄엄 깔았다. 덮개돌이 없이 확인된 4기의 돌널은 돌덧널형 3기, 돌널형(石棺形) 1기이다. 바닥은 4호 돌널만 전면에 잔자갈을 깔았고 나머지는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로는 돌검(石劍) 5점, 돌살촉 2점, 돌도끼 2점, 돌끌(石鑿) 1점 등이 있다.

집자리는 총 5기인데, 서로 중복되어 있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만 확인되었다. 3호 집자리 서쪽 짧은 벽이 11호 고인돌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에 집자리가 폐기된 후에 고인돌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는 기둥 구멍만 확인되었다. 1호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편이 출토되었고, 2호에서는 붉은 간 토기 편, 민무늬 토기 바닥 편, 토제 그물추 편이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에서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연대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와 구멍무늬 토기 편 등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문화 단계까지로 추정된다.

상적 고인돌Ⅲ은 영취산 북쪽 기슭에 있는데,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적량천변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동서 40m, 남북 25m에 14기가 분포하고 있었지만 원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4기뿐이고 나머지는 이동되었다. 고인돌 사이나 그 주변에서 26기의 돌널(石室)이 조사되었다. 따라서 상적 고인돌Ⅲ에서는 모두 29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이 없이 발견된 돌널은 무덤방의 구조와 방향에 따라 6개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제1구역에는 3기가 있는데 삭토된 곳에 더 많은 무덤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2구역에는 4기가 있는데 묘역 시설(墓域施設)이 거의 없는 무덤방들이 독립적으로 산재되어 있다. 4호 돌널에서 비파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제3구역에는 5기가 있는데, 독립적인 묘역 시설을 가진 것과 묘역 시설 사이에 깬돌이 깔아져 있어 연결된 것이 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다. 9호 돌널에서 비파형동검 검날 끝부분이 출토되었다. 제4구역에는 7기가 있는데, 무덤방 사이에 깬돌들이 깔아져있어 묘역 시설이 연결되어 있다. 무덤방은 모두 돌덧널형이다. 13호 돌널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 17호 돌널에서는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제5구역에는 3기가 있는데, 무덤방들은 독립적인 묘역 시설을 가지고 있지만 경계가 불분명하다. 무덤방은 모두 돌덧널형이다. 21호 돌널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이 출토되었다. 제6구역에는 4기가 있는데, 심하게 파괴되어 구조를 살피기 어렵다. 22호 돌널에서는 비파형동검편이 수습되었다.

상적 고인돌Ⅲ의 덮개돌은 석질(石質)이 모두 안산암계인데, 주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들이다. 무게는 4~50톤 정도이다. 받침돌은 4기의 고인돌에서만 확인된다. 덮개돌 두께가 모두 1.4m 이상인 괴석형이며, 받침돌도 대형이다. 묘역 시설은 장방형과 타원형이 있지만 타원형이 많다. 묘역 시설은 독립된 묘역을 가지고 있지만 묘역 사이를 깬돌로 깔아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유형, 하나의 독립적인 묘역 시설을 가지면서 가장자리를 구획한 유형, 묘역 시설이 없이 무덤방만 있는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뚜껑돌은 15기에서 확인되고 있어 상당히 유행하였다. 판돌 여러 매를 이중으로 덮은 유형, 판돌을 한 겹으로만 덮은 유형, 무덤방 상단에 깬돌이 깔려진 유형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돌덧널형, 돌널형, 돌 두름형(圍石形)으로 구분된다. 돌덧널형은 깬돌이나 자연석으로 쌓거나 세워 축조한 형식으로 상적 고인돌Ⅲ에서 주류를 이룬다. 바닥 시설은 바닥 전면에 돌을 깐 것, 세 부분에만 돌을 깐 것, 두 부분에만 돌을 깐 것, 한 부분에만 돌을 깐 것, 아무런 시설도 하지 않은 것이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류, 석기류, 청동기류가 있다. 토기류는 유문 토기(有文土器),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편 등이 있는데, 모두 작은 파편들이다. 석기류는 돌검, 돌살촉, 돌끌, 홈자귀, 가락바퀴, 숫돌 등이 있다. 17호 돌널에서는 완형의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7점과 비파형 청동 투겁창 1점이 출토되었다. 7호 고인돌과 2호 돌널 출토품만 완형이고, 나머지 5점은 슴베(莖部)나 검날 끝부분만 남아 있다. 비파형동검의 슴베 한쪽에는 결박용 홈이 파져 있는데, 7호 고인돌 출토품은 양쪽 모두에 홈이 파져 있다. 슴베 중간쯤에 결박흔(結縛痕)이 남아 있어 실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7호 고인돌과 21호 돌널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밑의 흙에서 목질(木質)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어 비파형동검이 목제 칼집 속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호 돌널에서는 비파형동검과 비파형 청동 투겁창(琵琶形銅矛), 옥(玉)이 함께 출토되었지만 나머지 6점의 비파형동검은 1점씩만 부장되어 있었다. 상적 고인돌Ⅲ의 무덤방들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6개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각 구역에는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무덤방이 1기씩 있는데, 주변 무덤방보다 크고 정교하다.

상적 고인돌Ⅳ는 해발 168.6m의 야산과 해발 135m의 제당산 사이에 형성된 계곡에 위치하는데, 해발 32~40m 정도에 해당한다. 고인돌 3기가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무게가 92톤에 달하는 초대형이고, 나머지 2기는 각각 5톤과 7톤이다. 2호 고인돌에서만 돌덧널형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소형 자갈을 전면에 깔았다. 미완성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적량동 상적 고인돌군은 4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상적 고인돌Ⅲ은 7호 고인돌의 무덤방 바닥에서 완형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으며, 2호 무덤방에서는 완형으로 추정되는 비파형동검과 비파형 청동 투겁창, 대롱옥(管玉) 5점이 출토되었다. 2호 돌널에서 출토된 비파형 청동 투겁창은 출토 유구가 확실한 사례로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한 유적에서 8점의 청동기가 출토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요서·요동 지역의 비파형동검 문화 유적들에 비견할 수 있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적 고인돌Ⅲ의 발굴 조사 결과로 비파형동검이나 비파형 청동 투겁창이 고인돌에 껴묻거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점에서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와 고인돌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상적 고인돌군의 연대는 절대 연대 측정치는 없지만 출토된 비파형동검과 비파형 청동 투겁창 등으로 보아 상한 연대는 기원전 8~7세기로, 중심 연대는 기원전 6~4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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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9년 1월 16일~1989년 3월 5일 여수 적량동 상적 지석묘 1993 전남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