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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구석기 문화(시베리아의 舊石器文化)

한국고고학사전


시베리아의 구석기 문화
기본 정보
시대 구석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자갈돌 석기, 데니소바인, 르발루아 기법, 아슐리안, 무스테리안, 돌날 석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3
집필자 이헌종



설명

시베리아의 구석기 연구는 1871년 보옌느이 고스피탈(Военный госпиталь) 유적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 당시 연구가 주로 이루어진 곳은 안가라(Ангара)강과 예니세이(Енисей)강 유역이었다.

시베리아의 구석기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자는 1883년부터 예니세이강 지역을 중심으로 아폰토바 고라(Афонтова гора) 유적 등 이 지역의 구석기 유적을 다수 발견한 사벤코프(Савенков, И. Т.)다. 1896년에 카센코(Кащенко, Н. Ф.)는 매머드 사냥꾼들의 임시 정주지인 톰스크(Томск)시의 라게르느이 사드(Лагерный сад) 유적 조사에서 보다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발굴을 시도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현재 시베리아 고고학의 기초를 다진 오클라드니코프(Окладников, А. П.)와 게라시모프(Герасимов, И. П.)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게라시모프는 1928년에 말타(Мальта) 유적을, 오클라드니코프는 1930년대 말 부레티(Буреть) 유적을 발견하였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알타이(Алтай) 지역 및 시베리아와 극동의 구석기 연구를 주도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그랴즈노프(Грязнов, М. П.)와 조야 아브라모바(Абрамова, З. А.)는 예니세이강 유역 일대에서 아폰토바 고라 유적, 코코레보(Кокорево) 유적군, 노보셀로보(Новоселово) 유적, 타시티크(Таштык)강 일대의 유적을 발견, 조사하였다. 아스타코프(Астахов, С. Н.)는 다층위 유적(구석기-중석기-신석기)인 코코레보 4 유적을 발굴했다. 또한, 그는 1965년 이후 소스노브스키(Сосновский, Г. П.)가 조사를 시작했던 사얀-투바 지역의 구석기 유적들을 조사·연구하였다. 이 시기의 시베리아 구석기 시대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오클라드니코프가 노보시비르스크(Новосибирск) 아카뎀고로독(Академгородок)에 소련 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역사·언어·철학 연구소(Институт истории, филологии и философии)를 설립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주요 유적들뿐 아니라 몽골, 중앙아시아 및 근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유적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젊은 인재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동북 시베리아 지역의 야쿠츠크에서는 모차노프(Мочанов, Ю. А.)가, 마가단(Магадан)에서는 디코프(Диков, Н. Н.)가 구석기 시대 연구를 수행하였다.

시베리아 구석기 시대는 크게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된다. 시베리아 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울라링카(Улалинка) 유적과 카라마(Карама) 유적, 북부 미누신스크(Минусинск) 분지의 카멘느이 로그(Каменный Лог) 유적, 예니세이 지역의 쿠르탁(Куртак) 유적군, 안가라 지역의 이게테이(Игетей) 유적군, 극동의 우스트-투(Усть-Ту) 유적, 쿠마라(Кумара) 1 유적, 보고로드스코예(Богородское) 유적, 야쿠츠크(Якутск)의 디링-유랴흐(Диринг-Юрях)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석기 문화의 특징은 ‘자갈돌 석기 전통’이다. 울라링카 유적의 연대는 고지자기 연대 측정에 기초하여 70만~50만 년 전 전후로 추정되며, 주요 석기군은 조잡하게 타격된 찍개류와 예비 타격된 몸돌 등이다. 알타이 지역에서 2001년에 발굴된 카라마 유적에서는 8m가 넘는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그중 7층, 8층, 11층, 12층에서 문화층이 나타난다. 이 문화층에서는 전기 구석기 시대의 고졸한 형태의 자갈돌 석기들이 수습되었다. 이 유적의 가장 젊은 연대는 524,000±110,000 BP(PTL-509)이다. 이 유적은 북아시아에서 가장 연구가 잘된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80만~50만 년 전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게테이 유적군은 다량의 찍개와 대형 격지를 활용한 석기들을 특징으로 한다. 극동의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대부분 찍개이며 특별한 조정 타격 없는 몸돌, 두터운 격지나 격지 석기 등 고졸한 석기군이다. 석기에는 심하게 녹이 형성되어 있고, 몸돌과 격지의 분석에서 가장 원시적인 기법인 오렌지 조각 떼기 기법이 나타난다. 한편 보고로드스코예 유적에서는 주먹 도끼가 처음 확인되었다. 야쿠츠크 북부 140km 지점, 레나 강가에 위치한 디링-유랴흐 유적을 발굴한 모차노프는 고지자기 측정법에 의해 최저 220만~100만 년 전에서 최고 320만~310만 년 전으로 연대를 정하였다. 이 유적에서는 찍개를 중심으로 하는 다량의 자갈돌 석기들이 발굴되었다. 하지만 이 연대는 시베리아 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기 구석기 시대 유적은 주로 알타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카라-봄(Кара-Бом) 유적, 데니소바 동굴 유적, 카멘나야(Каменная) 동굴 유적, 스트라시나야(Страшная) 동굴 유적, 오클라드니코프 동굴 유적, 우스트-카라콜(Усть-Каракол) 유적, 우스트-칸(Усть-Кан) 동굴 유적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의 편년은 일부 유적의 하부층을 제외하면 주로 지란(Zyr’an: 130,000-50,000 BP)기에 집중되어 있다.

연구자들은 데니소바 동굴 유적 최하층(22층)의 절대 연대와 초기 르발루아 석기 및 후기 아슐리안기의 석기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중기 구석기 시대의 상한이 약 30만 년 전까지 상회할 수 있다고 본다. 르발루아 기술에 대해서는 일부 지역성을 띠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근동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그것과 상당한 연관성을 보인다. 특히 중기-후기 구석기대 전환기의 카라-봄 유형과 우스트-카라콜 유형의 석기 문화의 특성은 르발루아의 기술에서 돌날 석기 문화로 전환하는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Initial Upper Paleolithic, IUP)의 석기 제작 기술을 보여 준다. 이는 이주의 산물이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 발전의 결과로 확인되고 있다. 한편 데니소바 동굴 유적에서 발굴된 치아와 하나의 손가락뼈를 이용한 DNA 연구 결과,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비슷한 시기에 공존한 새로운 그룹의 인류가 확인되었다. 이 인류를 데니소바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8만~3만 년 전, 7~8세의 갈색 눈을 가진 여아로 확인되었다. 한편 오클라드니코프 동굴 유적의 석기 문화와 인류의 증거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알타이 산악 지대에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데니소바인이 공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스테리안 석기 문화의 확산 범위는 동쪽으로 예니세이의 드부글라즈카(Двуглазка) 유적을 경계로 나타나지 않으며, 쿠르탁 지역과 바이칼 지역에서 일부 이와 유사한 기술적 특징을 갖고 있는 석기군이 나타난다. 자바이칼(Забайкальский)에는 톨바가(Толбага) 유적, 바르바리나 고라(Варварина гора) 유적 등 후기 구석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있다. 이 이적들에는 석기 제작 기술상 돌날 기법과 함께 무스테리안식 석기 제작 기법이 일부 잔존해 있다. 한편 아직까지 극동 지역에는 무스테리안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후기 구석기 시대는 지역 기준의 빙하기 변화에 따라 크게 전기, 중기, 후기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4만 5천 년 전을 전후로 후기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다. 후기 구석기 시대 전기(4만 5천~3만 년 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우스트-카라콜 후기 구석기층, 카라-봄 후기 구석기층, 말라야 스이야(Малая Сыя) 유적 2, 3층, 우스트-코바(Усть-Кова) 유적 3층, 이게테이스키 로그(Игетейский Лог) I 유적, 소스노브이 보르(Сосновый Бор) 유적 하층, 마카로보(Makarovo) 3, 4 유적, 바르바리나 고라 유적, 톨바가 유적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르발루아 기술이 일부 확인되지만 대부분 체계화된 돌날 기법이 주로 나타난다. 주요 석기로는 각주형 몸돌, 대형 긁개, 거칠게 잔손질된 긁개류, 돌날상의 긁개 등이 있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대형 돌날 석기 문화 기반의 카라-봄 유형과 중소형 돌날 문화 기반의 카라콜 유형이 공존하였다. 현재 데니소바인의 발견과 알타이 지역의 두 돌날 석기 문화가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돌날 석기 문화와 현생 인류의 이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되고 있다. 시베리아의 초원 지대를 따라 이동하던 현생 인류는 주로 양면 박리 기반의 잎 모양 찌르개를 사냥 도구로 활용하였다. 한편 극동의 오시노브카(Осиновка) 유적, 게오그라피체스코예 옵셰스트보(Географ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 동굴 유적은 몸돌, 찍개 등 자갈돌 석기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형 긁개 등이 주요 석기다.

후기 구석기 시대 중기(2만 7천~3만 년 전)는 사르탄(Sartan) 빙하기(22,000-11,000BP)와 연관되며 말타, 부레트 유적, 보옌느이 고스피탈 유적, 아친스크(Ачинск) 유적, 산느이 므이스(Санный Мыс) 유적, 크라스느이 야르(Красный Яр) 유적, 셀렘자(Селемджа) 유적 1 문화층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의 석기 문화의 특징은 돌날 석기 문화의 확산, 세형 돌날 문화의 등장, 양면 박리 기반의 잎 모양 찌르개의 활용, 매머드, 비너스상, 새 조각상 등 예술품과 뼈 연모 등이다. 크라스느이 야르 최하층의 유적은 말타 문화의 발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인접 지역인 몽골 일대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의 특성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유적 중 하나다.

후기 구석기 시대 후기(2만~1만 년 전)는 사르탄 발전기와 연관되어 있다. 이 시기의 유물은 기존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 기법을 계승하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그 특징은 돌날 석기의 다양화 및 소형화, 세형 돌날 제작 기술의 다양성, 양면 박리 기반의 잎 모양 찌르개 및 뗀 돌살촉의 등장, 토기의 등장 등이다.

이 시기는 다시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단계(2만~1만 5천 년 전)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아폰토바 고라 2 유적(예니세이 지역), 소스노브이 보르 유적 5층, 이게테이 라비네(Игетей Равине) 1 유적(바이칼), 산느이 므이스 유적 4, 5층, 쿠날레이(Куналей) 유적, 소하티노(Сохатино) 유적 1, 4, 스투덴노예(Студеное) 유적, 크라스느이 야르 유적(자바이칼), 셀렘자 유적 2~4 문화층(아무르깅 중류) 등이다. 2단계(1만 5천~1만 년 전)의 대표적인 유적은 체르노-오제리에(Черноозерье) 2 유적(서시베리아), 코코레보 1~3 유적, 타시티크 1, 2 유적, 노보셀로보 4 유적(예니세이강), 베르홀렌스카야 고라(Верхоленская Гора) 유적(안가라강), 오슈르코보(Ошурково) 유적, 우스트-캬흐타(Усть-Кяхта) 유적(자바이칼), 마카로보 2 유적(레나강), 우스티노프카(Устиновка) 1, 3 유적, 수보로보 3, 4(Суборово) 유적(연해주), 오곤키(Огоньки) 유적, 임친(Имчин) 유적, 타코예(Такое) 1 유적(사할린), 우시키(Ушки) 1 유적, 듁타이(Дуктай) 유적군(알단강) 등으로 대표적인 유적들만 하여도 상당히 많다.

이들의 석기 문화는 세형 돌날 문화로 대표되며, 발전된 돌날 석기 전통과 다양한 소형 석기 즉 대각선 새기개, 손톱형 긁개 등이 자주 출토된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독특한 문화적 특징은 주거지와 고토기의 사용이다. 고토기가 발견된 유적으로는 셀렘자 유적군에 속한 우스트-울마(Усть-Ульма) 유적, 우스트 캬흐타 유적, 우스티노프카 3 유적 등이 있다. 우시키 유적을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 시기의 문화적 특징을 요약하면 토기의 등장, 반정착의 확산, 다양한 석기 문화의 공존 등 신석기로 전환되는 증거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구석기 시대의 해체와 신석기 시대의 통합으로 점철된 과정을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잘 보여 준다. 듁타이 문화는 셀렘자 문화의 확장 과정에서 나타난 문화로 북미의 석기 문화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난 100년이 넘는 동안 시베리아 구석기의 연구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인들의 시베리아로의 이동과 시베리아 정착민과의 관계, 아슐리안 주먹 도끼 문화와 자갈돌 석기 전통의 상관성, 중기 구석기에서 후기 구석기로의 전환기와 인류의 유전적 해부학적 특성, 데니소바인의 발견과 다지역 진화론적 접근 및 이주, 카라봄 유형과 카라콜 유형의 돌날 석기 문화와 IUP 논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데니소바인의 공존에 대한 연구, 말타와 부레트 유적의 석기 기술상의 논쟁과 인류학적 논쟁, 세형 돌날 문화의 발생과 그 전파 경로, 특히 동아시아 및 미 대륙으로의 이주 문제, 후기 구석기 말기와 신석기 초기의 전환기적 문화 양상 등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구석기 문화의 주제들은 세계 고고학의 주요 주제들과 맞닿아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그 지역적 특성을 비교하고 해석하는 데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