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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동 유적(光州 長德洞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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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장덕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1049(신완)·1276(장자)·1524(성덕)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구덩이, 독무덤, 움무덤, 민무늬 토기, 돌끌, 돌칼, 송국리식 집자리, 돌살촉, 항아리 모양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삼각 돌칼, 삼각 덧띠 토기, 독 모양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수민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1049(신완)·1276(장자)·1524(성덕) 일원에 위치한다. 수완 택지 개발 사업 지역에 포함되어 2005~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구릉의 정상부의 평탄면에 입지하며 주변에 풍영정천이 흐르고 낮은 구릉과 넓은 평야가 있다. 조사 구역은 장덕동에 위치한 성덕·신완·정자 유적과 수완동에 위치한 수문 유적으로 구분된다. 성덕 유적과 장자 유적은 남북 방향으로 인접하고 있고, 신완 유적과는 북쪽으로 약 500m정도 떨어져 있다. 장덕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22기, 고인돌 2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 5기, 독무덤(甕棺墓) 3기와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7기가 조사되었다.

신완 유적(장덕동 1049) 일원에서는 집자리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해발 37m의 구릉 정상부에 자리한다. 1호와 2호 집자리는 인접해 있고 3호 집자리는 북쪽으로 40m정도 떨어져 있다. 1호 집자리는 삼국 시대 집자리가 만들어지면서 남쪽 벽 일부를 파괴하였지만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다.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8개의 기둥 구멍이 불규칙하게 파져 있다. 민무늬 토기 편, 돌끌(石鑿)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집자리는 평면 말각방형이며 남쪽 벽 쪽에 있는 돌출된 구조는 출입 시설로 추정된다. 길이 3.6m, 너비 3m, 깊이 0.4m이다.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바닥 편이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는 절반 정도 파괴되어서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바닥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와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신완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들은 모두 송국리식이고, 1호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2430±80 BP로 측정된 것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자 유적(장덕동 1276 일원)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8기, 구덩이 5기, 독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들은 구릉 정상부에 일렬로 축조되었다. 1·2호 집자리는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돌살촉, 돌칼,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3호와 3-1호는 서로 중복되어 있는데 3-1호가 나중에 만들어졌다. 평면 형태는 모두 방형이며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4호는 3-1호 집자리의 서쪽 벽 일부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3.9m, 너비 3.9m, 깊이 0.4m이다. 내부에서 숯이 다수 확인되었다.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고 벽 도랑(壁溝)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벽 도랑에서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바리 토기(鉢形土器)와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6호 집자리는 평면 원형이며 크기는 길이 3.6m, 너비 3.4m, 깊이 0.4m이다.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이 확인되었다. 바리 모양 토기, 돌살촉,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7호 집자리는 심하게 파괴되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바닥에서 민무늬 토기 바닥 편, 돌도끼, 돌끌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경사면에 축조되었다. 5기 모두 심하게 파괴되어 원래 모습을 알기 어렵다. 1호 구덩이에서 바리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경사면에서 확인되었다. 3기 모두 삼각 덧띠(三角形粘土帶)가 부착된 큰 독과 경질 무문 토기(硬質無文土器)인 작은 독을 사용하였다. 3호 독무덤의 작은 독에서 바리 모양 토기 1점이 확인되었다.

장자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들은 모두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며, 독무덤들은 그보다는 늦은 초기 철기 시대에 조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덕 유적(장덕동 1524) 일원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 11기, 고인돌 2기, 돌널무덤 1기와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 7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남서쪽 사면에 등고선 방향으로 분포한다. 1·5·6호 집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부가 파괴되어서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 말각 방형이며 바닥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있다. 2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민무늬 토기 편,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製石鏃), 간 돌검,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삼각 돌칼, 미완성 석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유적 중앙과 남동쪽에서 각각 1기씩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3.6m, 너비 3.2m, 두께 1.2m이고, 무게는 약 20톤이다. 덮개돌 남쪽 부분에는 후대의 채석흔인 쐐기가 남아 있다. 하부 구조는 받침돌(支石)과 판돌(板石)이 확인되었지만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2호 고인돌은 1호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덮개돌은 길이 2.7m, 너비 1.4m, 두께 1.7m이고 무게는 약 10톤이다. 하부 구조는 받침돌과 돌널(石棺)이 확인되었다. 돌널은 길이 1m, 너비 0.3m이다.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다.

돌널무덤은 1호 고인돌의 남쪽에 연접해서 축조되었다. 파손이 심해서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고, 유물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 길이 1.5m, 너비 0.7m이다.

움무덤은 집자리들과 동일한 공간에 조성되었다. 4호 움무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등고선과 나란하게 축조되었다. 무덤 내부에서 나무널(木棺)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중 7호 움무덤은 2호 집자리와 중복되어 있었는데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토기(鉢形土器),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가 출토되었다.

성덕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들은 형태와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는 시기를 특정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집자리들과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움무덤은 청동기 시대 집자리들과 같은 공간에 축조되었는데, 7호 움무덤이 2호 집자리를 파괴한 것으로 보아 집자리들보다 나중에 조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삼각 덧띠 토기가 출토되어 움무덤들은 초기 철기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에는 마을과 무덤들이 조영되다가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면 무덤들만 조영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장덕동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22기로, 모두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영산강 유역에서 조사된 송국리식 집자리 유적들과 비교했을 때 장덕동 유적은 비교적 대단위의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은 독무덤 3기, 움무덤 7기가 조사되었다. 무덤에서는 삼각 덧띠 토기가 출토되었고 독무덤은 삼각 덧띠가 붙은 일상용기를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장덕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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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6월~2006년 2월 광주 장덕동 유적 2008 호남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