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무동 유적(大邱 鳳舞洞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봉무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1567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화덕 자리,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짧은 빗금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도끼, 가락바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유병록 |
설명
대구광역시 기념물 봉무동 고분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1567에 위치한다. 지방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8~2010년 조사하였으며, 청동기 시대 유적은 2단계 Ⅰ구역에서 집자리 7기, 구덩이 4기, 원삼국 시대 집자리 17기, 구덩이 9기 및 삼국 시대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문암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소구릉 사이 형성된 충적 평야 지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1호는 장축 방향이 동·서향이고 나머지 6기는 남·북향이다. 1~3호, 4·5·7호가 밀집 분포하며, 6호는 그 중앙 부분에 위치한다. 5호는 길이 8.6m, 너비 3.6m로 가장 규모가 크며, 나머지는 길이 6~8m, 너비 3~4m이다. 집자리 가운데에는 화덕 자리가 1개인 것과 2개인 것이 각각 3기씩, 그리고 3개인 것 1기가 있다. 일부 집자리에서는 기둥 구멍과 벽 도랑(壁溝), 토기 보관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상면에는 1호는 점토만 깔았고, 3·5호는 점토를 바르고 불로 다진 후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등의 토기와 돌도끼(石斧)와 가락바퀴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집자리 7기의 내부 시설이나 출토 유물이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은 점에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연대는 AMS 측정을 통해 2호 30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55년), 3호 27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865년)의 결과를 얻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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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조사 | 2008년~2010년 | 대구 봉무동유적Ⅴ | 2011 | 영남문화재연구원 |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 국가유산 | 대구광역시 기념물 | 봉무동고분군 (鳳舞洞古墳群) | 🔗 |
한국고고학저널
- "대구 봉무들에 자리잡은 청동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대규모 생활터전", 2009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1). 대구 봉무동유적Ⅴ. https://www.riss.kr/link?id=M129288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