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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산동 고인돌[羅州 寶山洞支石墓]

한국고고학사전
(보산동 고인돌에서 넘어옴)


보산동 고인돌
기본 정보
동의어 나주 보산동 고인돌, 나주 보산동 지석묘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보산동 용치마을 217번지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민무늬 토기, 덧띠 토기, 세골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영문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보산동 용치마을 217번지에 위치한다. 광주~목포 간 우회 도로 개설로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계곡 사이의 평지에 잘 다듬어 직육면체에 가까운 덮개돌(上石) 1기만 있었는데, 그 덮개돌은 길이 4m, 너비 2.5m, 두께 1m, 무게 약 20여 톤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것이다. 남북 장축인 덮개돌 아래에는 6매의 받침돌(支石)이 고이고 있었으나 원래는 10매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돌 안은 깬돌(割石)들로 차 있었으며 길이 2.2m, 너비 0.7m의 무덤방(墓室)이 노출되었으나 불확실하며, 덮개돌 아래 북쪽 끝 받침돌 밑에서 동서 장축으로 길이 1m, 너비 0.4m의 소형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깬돌로 정교하게 쌓고 바닥에는 잔자갈을 깐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뚜껑돌(蓋石)은 없었다. 크기로 볼 때 성인을 세골장(洗骨葬)한 것이거나 어린아이를 묻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겹아가리(二重口緣)의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는데, 늦은 시기에 보이는 덧띠 토기(粘土帶土器)와는 다르고 서북 지방의 팽이 토기(角形土器)에 더 가깝다. 보산동 고인돌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덮개돌의 주위에서 발견된 쐐기 자국과 떼어낸 흔적(採石痕)들인데, 그 크기는 길이 0.1~0.2m, 너비 0.05~0.15m 정도로 모두 30여 개에 달한다. 이는 당시의 고인돌 축조인들이 부근 야산 채석장에서 돌을 떼어 내거나 덮개돌을 치석(治石)할 때 쐐기를 박았던 흔적으로 여겨진다. 이 고인돌은 덮개돌 밑에 10여 개의 받침돌로 고인 대형의 바둑판식(南方式)이며, 덮개돌이 입방체로 잘 정제된 상태이다. 이런 형태는 무덤보다는 묘표석이나 제단으로 사용된 사례가 많다. 출토된 토기 편으로 보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축조된 고인돌이며, 전남에서 국도 개설로 구제 발굴된 최초의 고인돌이다. 고인돌의 무덤방과 소형 덮개돌은 나주 남산공원으로, 덮개돌은 길가로 이전·복원하였다. 그 후 도로 확장으로 덮개돌은 다시 이전되어 현재 나주향교 뒤 광주-목포 간 국도에서 영암 방향 갈림길인 삼거리에 ‘천년고도 목사골 나주’ 표석의 받침돌로 사용되고 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77년 9월 29일~1977년 10월 5일 나주 보산리 지석묘 발굴조사보고 1977 전남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

  • 최몽룡. (1977). 나주 보산리 지석묘 발굴조사 보고서 – 영산강 유역의 고고학적 조사연구 (9). 한국문화인류학, 9(1), 93–118. https://www.riss.kr/link?id=A3056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