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돋을띠 골무늬 토기, 돋을띠 마디 토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한반도 전역 |
| 관련 정보 | |
| 유적 | 하남 미사리 유적 |
| 키워드 |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미사리 유형, 자돌무늬, 빗금무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돋을띠무늬 토기는 구연부 바깥에 점토띠를 붙이고, 그 위에 빗금무늬(斜線文) 또는 자돌무늬(刺突文) 등을 새긴 것이다. 무늬 대신 두 손가락으로 점토띠를 어긋나게 비틀어 붙인 것, 무늬 없는 것도 있다. 남한에서의 돋을띠무늬는 주로 바리 토기(鉢形土器)의 아가리에 장식되지만, 북한 지역에서는 바리 토기 외에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에도 새겨지는데, 아가리에서 떨어진 몸통 또는 목(頸部)과 몸통의 경계 지점에, 또는 몸통에 붙기도 한다. 점토띠의 단면 형태는 삼각형·사다리꼴(梯形)·반원형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가리 전체에 돌려지지만, 3~4개로 분리되어 붙는 것도 있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刻目突帶文土器)’라고도 하며, 점토 띠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늦은 시기까지 남아 있는 사례도 있다. 중국 동북 지역 및 북한의 압록강·두만강 유역에서 먼저 알려졌고, 이후 남한에서는 중서부 지역에서 확인된 이래 최근에는 거의 전국적인 출토 사례를 보인다. 그 원류는 중국의 동북 지역이며 돌칼(石刀)·붉은 간 토기丹(塗磨硏土器)·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자귀날 돌도끼(單刃石斧) 등을 공반한 농경 문화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점차 남쪽으로 확산되었다고 생각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일본까지 전파되어 농경 사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 토기와 관련한 주요 유적의 하나인 미사동 유적에서는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를 가진 정방형의 집자리에서만 돋을띠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에 따라 미사리의 집자리와 돋을띠무늬 토기를 일괄 하여, 미사리 유형(渼沙里類型)으로 분류하는 경향도 있다. 이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시기 구분뿐만 아니라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의 전환기 연구에 큰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고학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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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박순발. (2003). 미사리유형 형성고. 호서고고학, 9, 85-112.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2474203
- 안재호. (2000). 한국 농경사회의 성립. 한국고고학보, 43, 41-66. https://www.riss.kr/link?id=A105301745
- 천선행. (2005). 한반도 돌대문토기의 형성과 전개. 한국고고학보, 57, 61-97.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139161
- 鄭漢德. (1992). 新版 古代の日本 2―アジアから見た古代日本―東アジアの稲作農耕. 角川書店.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1-I43111131072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