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리 청등 유적(完州 九巖里靑燈遺蹟)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완주 구암리 청등 유적, 완주 수계리 청등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구덩이, 움무덤, 집자리, 회곽묘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천선행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46-110 일원에 위치한다. 완주 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에 앞서 2014~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도랑(溝),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회곽묘(灰郭墓), 구덩이, 도랑이 확인되었다. 유적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이 위치한다.
움무덤은 5기로 해발 28~37m 내외의 구릉 서사면 말단부에 조성되었다. 움무덤은 각각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형태는 장방형, 원형이고, 길이 1.3~2.3m, 너비 0.48~0.96m이다. 장단비는 대체로 2에서 3사이이고, 잔존 깊이는 0.1~0.94m 정도이다. 토층에서 나무널(木棺) 흔적(1·5호), 통나무널 흔적(2·4호)이 확인된다. 청동 유물은 5호에서 세형동검 1점만 출토되고, 토기는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1호), 덧띠 토기(粘土帶土器)(2·3호)가 각각 한 점씩 출토되며, 4호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와 토기의 형태는 인근에 위치하는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거의 동일하므로,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초~2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전라북도 지역 초기 철기 시대 문화가 황방산 일대의 원천천 유역으로 중심지를 이동하여 전라북도 각지로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계리 청등 유적은 인근의 완주 둔산리 서당 유적과 마찬가지로 유물을 개별 무덤에 하나씩 껴묻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철기가 출토되지 않고, 청동제 거울이나 옥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의 껴묻거리 수는 1점 내지 2점으로, 이 무덤을 조성한 집단들의 사회적 위계가 전주나 완주 지역의 중심지 집단들보다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7). 완주 둔산리2·둔산리 서당수계리 청등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4843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