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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강 유적(寧邊 九龍江遺蹟)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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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강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영변 구룡강 유적, 녕변 구룡강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안북도 녕변군 구룡강 기슭 섬마을
관련 정보
성격 집자리
키워드 집자리, 화덕 자리, 공귀리식 토기, 미송리식 토기, 묵방리식 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반달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안북도 녕변군 구룡강 기슭 섬마을에 위치한다. 유적은 1982~198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세죽리 유적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로 100m, 남북으로 500m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조사 결과 집자리 19기를 확인하고, 집자리에서 나온 토기를 기준으로 3개 시기에 걸쳐 유적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였다.

1기층에서는 공귀리식 토기들이 나온다. 15호 집자리는 평면 방형의 반 움집으로 바닥에는 진흙을 얇게 펴고 다졌다. 움벽 밖으로 한 켠에 벽장을 달아 내었다. 1기층의 유물은 반달 돌칼, 갈판(碾石), 간 돌검, 간 돌살촉석기류와 흙으로 빚어 만든 그물추, 가락바퀴도 있다. 질그릇들은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또는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있다.

2기층은 미송리식 토기를 특징으로 하지만, 집자리의 구조, 토기의 갖춤새로 다시 두 유형으로 분류한다. 1유형은 2·5·10·13호가 속하는데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규모는 보통 30㎡이고, 화덕은 1기가 있다. 2유형은 6·7·9호로 장축이 동서 방향으로 규모가 1유형에 비해 크며 화덕은 2기가 있다. 5호의 경우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둔 장방형으로 길이 7m, 너비 4.5m, 깊이 0.35m이며, 기둥 구멍은 보이지 않으나 벽 가장자리 다진 바닥 위에 기둥을 세웠던 것들이 불탄 채 남아 있고 화덕이 1기 있다. 6호는 규모가 80.5㎡로 1유형에 비해 3배에 이르는 대형이다. 1유형에서 나온 토기류는 겹아가리에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를 새긴 토기와 미송리식 토기류가 출토되고, 2유형은 1유형의 토기류와 함께 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막대 손잡이가 나온다. 2기층 출토 석기류는 돌도끼(石斧), 돌호미(石鋤), 반달 돌칼, 턱자귀(有段石斧), 간 돌살촉, 간 돌검, 돌창(石槍) 등이 있고,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와 그물추도 있다. 반달 돌칼은 25점이 나왔으며 돌호미는 곰배 모양을 하고 있다.

3기층에는 집자리 8기(3·4·8·12·14·18~20호)를 조사하였고, 묵방리식 토기를 특징으로 한다. 집자리는 대체로 깊이가 얕고, 잘 남아 있지 않다. 3호는 길이 7.8m, 너비 4m, 깊이 0.5m이다. 화덕 자리는 땅을 조금 파고 그 위에 바로 불을 땐 것으로 나타난다. 유물은 돌도끼, 반달 돌칼, 간 돌살촉,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와 토기로는 조롱박형 단지, 꼭지 손잡이 달린 토기 등이 있다. 유적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6호 집자리에서 2740±80 BP와 2829±80 BP로 나왔다.

참고문헌

  • 석광준 외. (2003). 강안리·고연리·구룡강 유적발굴보고. 백산자료원. https://www.riss.kr/link?id=M9034314
  • 석광준, 차달만. (1997). 구룡강유적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4.
  • 차달만. (1993). 청천강류역 청동기시대 유적들의 년대. 조선고고연구, 2.